[증시 1000시대 열자] 제1부 : 고개숙인 기관 ① 16대 40의 늪

지난 4월.한국 증시는 잘 나갔다. 월초 900선을 뚫은 종합주가지수는 1,000고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출이 '지수 1000 대망론'에 불을 지핀 것이다. 하지만 대망(大望)은 급작스럽게 '대망(大亡)'으로 추락했다. 단 16일(영업일수 기준)만이었다. 종합주가지수는 이 짧은 기간동안 936에서 728로 곤두박질치며 22% 급락했다. 지수가 연중최고에서 연중최저로 고개를 떨궈면서 단기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떨어진 증시란 불명예까지 안았다. 16일간의 대폭락은 한국증시의 천수답(天水沓)식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외국인은 이 기간중 2조2천9백억원어치의 매물을 쏟아부었지만 매물홍수를 막아낼 방어벽이 없었다.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해야할 기관투자가는 오히려 4천3백억원어치를 팔며 자체 수익률 관리에 급급했다. 개인투자자만이 1조8천6백억원어치를 사들이며 반전을 노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매매주체로서 기관은 개인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이는 한국증시가 '16대 40의 늪'에 빠져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국내 증시에서 작년말 현재 기관의 시가총액 보유비중은 16%.외국인은 40%를 웃돌아 올들어서는 43%까지 치솟았다. 기관비중은 개인(19%)보다도 낮다. OECD국가중 외국인 비중이 이 처럼 높은 곳은 없다. 주객이 전도되면서 한국증시는 천수답으로 전락했다. 외국인이 주식을 사면 주가가 오르고,팔면 떨어지는 '외국인만의 리그'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증시주권이 외국인에 넘어가면서 초우량기업 조차 경영권방어에 급급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문제는 기관의 영향력 감소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96년 기관의 시가총액비중은 30%였고,외국인은 13%였다. 그러나 증시를 완전개방한 98년이후 역전된 뒤 그 격차는 해마다 벌어지고 있다. 선물시장이 현물시장을 뒤흔드는 '웩 더 독(wag the dog)'이란 기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외국인과 투기적 개인이 선물거래로 시장질서를 어지럽히지만,기관은 수수방관할 뿐이다. 그렇다면 기관이 천수답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세성이 첫번째다. 국내 주식형 펀드의 설정액은 지난달말 현재 8조원.일본 2백60조원,미국 4천3백72조원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다. 채권형펀드와 MMF(머니 마켓 펀드)를 포함해도 한국 펀드에 들어와 있는 돈은 1백66조원에 불과하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 피델리티가 운용하는 자금(1조달러,1천1백50조원)의 14.4%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펀드의 규모다. 국내 주식형펀드의 평균 설정금액이 한국은 1백75억원. 삼성전자 주식을 20% 편입할때 살 수 있는 주식수는 7천7백40주 남짓이다. 외국인이 하루동안 삼성전자를 사고 파는 물량도 안되는 셈이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지속적으로 이윤(profit)을 창출하면서 자본시장의 리더로서의 자부심(pride)을 갖고,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힘(power)을 발휘할수 있는 이른바 '3P'를 상실했다. 기관이 빈사상태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종합주가지수가 1000고지를 넘을 수도,천수답의 한계를 넘어설 수도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미국 다우지수가 1000선에서 1,0000선으로 급등한 것은 기업연금이 주식을 사들이면서 부터다. 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국증시가 천수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조주현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