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무협 멜로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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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머우 감독의 무협 멜로 '연인'은 그의 전작 '영웅'의 대척점에서 출발해 같은 목표점에 도달한다.
개인의 사랑이 국가와 민족이란 대의(大義) 앞에 속절없이 희생됐던 '영웅'과 달리 '연인'은 국가에 대한 개인의 의무보다 사랑을 앞세운다.
'연인'은 '영웅'에 비해 액션의 스케일은 작다.
하지만 주제의 현대성,조직의 음모와 개인의 사랑을 절묘하게 대비시킨 플롯,화려한 색감과 스타일 등으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이 작품은 당나라 말기 최대 반란조직 비도문 세력과 관군간의 암투를 기둥 줄거리로 삼았다.
여기에 관군의 장군 리우(류더화)와 진(진청우)이 여인 메이(장쯔이)를 연모하면서 동료에서 연적으로 바뀌는 정황을 보조 플롯으로 넣었다.
세 사람의 최후 결투 장면에는 '사랑의 함수'가 절묘하게 압축돼 있다.
이 영화에서 사랑의 방정식은 통념을 뛰어넘는다.
메이의 사랑을 얻는 것은 '3년간의 기다림'(리우)이 아니라 '3일간의 유혹'(진)이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 사랑은 거대한 책략(기다림)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사소한 접촉들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보여줬던 '영웅'과 달리 이 작품은 세 인물의 심리 변화에 주목한다.
주요 배경도 '영웅'의 사막 대신 단풍과 들꽃,울창한 숲이다.
색채 구사도 다르다.
도입부 '메이의 춤' 장면에서처럼 고유의 색채들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영상을 빚어낸다.
'영웅'에서는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색채가 화면 전체를 채웠다.
개인이 집단(국가나 민족)의 지배를 받고 있는 '영웅'과 달리 '연인'은 집단 속에서도 개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볼 만한 부분은 대나무숲의 결투신이다.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은 완만하게 휘어지는 대나무의 곡선미와 부드러움을 살렸지만 이 작품에선 대나무의 곧고 날카로운 성질을 강조했다.
베이거나 갈라져 뾰족해진 죽창들이 두 연인을 향해 쏟아지는 장면은 개인을 위협하는 전체의
압력을 상징한다.
10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