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기분 좋은 날 ‥ 최순자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 회장>

지난주 한 학생이 찾아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너무도 딱한 사정이 있었다. 그 학생은 몇 년 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공고에 다니던 동생과 함께 살다가,1997년도에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식솔 하나라도 줄이고자 군에 입대했다. 군 제대를 하고 집에 와보니 재혼한 아버지는 새엄마가 모든 것을 갖고 도망가는 바람에 술로 나날을 보내 당뇨와 여러가지 합병증으로 살 길이 막연한 지경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를 당해 폐인이다시피 한데다 지금 다른 새엄마가 아버지를 돌보고 있어 그 학생이 아버지 생활비를 보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생활이 어려워 새엄마가 집을 나가면 그 학생이 아버지를 돌봐야 하므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아무래도 대학을 나와야 할 것 같아 복학했다. 아버지를 봉양해야 하기 때문에 학업을 계속 이어가지 못하고 한 학기 다니고 일하고 또 한 학기 다니고는 일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학생의 학적부를 살펴보니 처음 입학했을 2001년에는 학점이 4.5만점에 4.45였다. 수강한 과목 중 한 과목만 A0이고 다른 과목은 모두 A+를 받았다. 그는 요즘 잘 나간다는 전자공학 쪽 공부를 해보려고 그 해 2학기에는 관련 과목을 신청했지만 성적은 3.52로 좋지 않았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학기 내내 학원 강사로 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듬해 다시 화학공학으로 전공을 바꾼 그는 4.27이라는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자신의 생활비 때문이었다. 그는 세금을 내지 못하는 빈민가족이기 때문에 학자금 융자를 받을 수 없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이번 학기에 학자금 융자를 받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에겐 등록금 3백24만원이 절실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충격은 아직도 이 사회에는 너무나 어려운 학생이 많다는 것이었다. 마음이 아파 학교에 있는 후배들에게 내가 1백만원을 낼 테니 1백만원씩 내 줄 수 있는 두 사람만 구해달라고 했는데 꼭 1주일 만인 어제 2백만원이 해결됐다. 우리학교 학생지원팀과 외부의 후배로부터 온정이 들어온 것이다. 오늘 아침 그 학생을 불러 돈을 전해주며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따뜻하며 아무리 어려워도 문을 두드리면 열리니 항상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최선의 노력을 하자고 말해줬다. 참으로 기분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