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프랑스.스웨덴 그리고 한국

원전센터(방폐장) 부지 선정 작업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벌써 20년 가까이 허송세월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반드시 필요한 시설임을 잘 알면서도 우리 동네만은 안된다고 모두가 손을 내저으니 그야말로 님비(NIMBY)현상의 전형이다. 우리의 지역이기주의는 유럽 선진국들과 비교해 봐도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얼마 전 방문했던 프랑스 로브 원전센터(중저준위)의 경우를 보자.이 곳은 40cm 두께의 두꺼운 시멘트구조물로 차단하긴 했지만 놀랍게도 땅을 파지 않은 채 지상에 폐기물을 저장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주민들의 반발이나 안전문제에 대한 의심은 털끝만큼도 찾기 어려웠다. 인근 마을 에포데몽시의 질 제하드 시장(주민대표)이 "지하수도 그냥 마시고 있다. 똑같은 시설을 하나 더 만든다고 해도 적극 유치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할 정도였다. 제하드 시장은 오히려 원전센터 유치에 따른 이점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시멘트공장 등 부수시설이 들어선 데다 이 센터 관리기구인 안드라(ANDRA)의 예산 지원 등으로 상당한 지역개발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인구도 10%가량 늘고 폐교도 복원됐다고 한다. 그는 "방문객이 늘어나 인근 지역과 연계한 관광코스를 개발 중"이라며 "후보지로 함께 거론됐던 다른 지역들은 지금 대단히 아쉬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유를 부렸다. 해저에 인공동굴을 파 원전센터를 조성한 스웨덴 항구도시 포스마크시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스웨덴 정부가 7백40만 크로네(약 1천억원)를 투입해 바다 밑 60m 지점에 건설한 이 동굴처분장은 저준위폐기물 처분을 위한 수평동굴 4개,중준위 폐기물 처리를 위한 수직동굴 1개로 구성돼 있으며 필요시 동굴을 증설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단단한 화강암 동굴인 데다 생활공간과 완전히 격리돼 있어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다. 주민들이 이 지역에서 재배한 농작물과 원전센터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상식(常食)하는 것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기념'으로 먹어보라고 권할 정도다. 스웨덴 정부가 포스마크 주민들에게 보상 또는 지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원전센터 설립에 따른 부수 효과가 적지 않다. 철도 항만 등의 시설이 보완됐고 1천개 정도 일자리가 늘어났다. 외국인 관광객(연 4만5천명선)과 국내 시찰단이 뿌리는 돈도 만만치 않다. 안전에 대한 믿음과 부수적 경제 효과는 고준위 폐기물 처리장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려는 데까지 연결되고 있었다. 스웨덴 정부는 최근 8개 대상지역 중 2개 지역으로 고준위폐기장 후보지를 압축했는데 비슷한 지반구조를 가진 곳에서 우리는 왜 빠졌느냐며 거세게 반발하는 내용이 신문의 주요기사로 장식될 정도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원전센터의 안전문제나 경제적 효과를 합리적으로 따지기 보다는 무조건 우리 동네는 안된다는 식의 맹목적 반대 분위기가 횡행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시민단체도 참여하는 공론화기구를 만들어 사회적 합의를 시도하겠다지만 원만한 합의가 나올 것으로 보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가 어렵다. 스웨덴에서 안내를 맡았던 한국인 가이드의 이야기는 우리 지역이기주의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좀 과장한다면 이 곳을 시찰한 사람들이 쓴 비용만 해도 벌써 원전센터 하나쯤은 짓고도 남았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선 모두들 안전상 문제가 없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작 돌아가선 입도 벙긋 못하더군요. 한국에서 원전센터건설에 찬성했다간 맞아 죽는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