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금융계열사 의결권을 제한하면

전삼현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공정거래법 개정이 큰 쟁점사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번에 공정위가 제출한 개정안의 내용 중 출자총액제한제도 유지나 계좌추적권 문제는 종래에도 크게 논의됐으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축소문제는 새로운 쟁점사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원칙하에 일반회사가 금융기관의 주식소유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이 일반회사의 주식소유도 제한해 왔으며 이는 관치금융의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 우리 자본시장이 전면 개방된 이후 외국자본이 우리 기업들을 적대적 M&A의 표적으로 삼으면서 이에 대한 보완조치로 경영권 방어가 필요한 경우 금융기관도 일반회사의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다소나마 분리원칙을 수정했다. 다만 대기업의 경우에는 아무리 경영권 방어의 필요성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총수의 전횡을 방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전제하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한 금융·보험사의 총수와 특수관계인은 보유주식 중 30% 내에서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제한했다. 그리고 이번 개정안에서는 30% 요건을 15%로 낮추고자 하고 있다. 결국 우리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외국 투기자본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보다 대기업 총수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 더 나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점은 외국 투기자본이 우리 기업들을 지배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공정위는 마치 외국투기자본이 우리기업을 지배하면 그 동안의 우리의 숙원사업인 경영투명성 제고가 실현되고 이는 우리 경제발전과 직결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대로 SK와 경영권 쟁탈전을 벌인 소버린은 기업사냥꾼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최근에는 사모펀드사인 뉴브리지 캐피털이 우리 자본시장에서 사냥할 표적을 찾기에 혈안이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출된 공정위의 개정안은 마치 큰 집 대문은 열어 놓고 현관문과 안방문만을 잠그도록 강제하다 앞으로는 현관문도 열어 놓고 안방문만을 잠그도록 강제하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2003년 가스공사 판결에서 법원은 경영권은 재산권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도 정부가 보호해야 할 헌법상 의무를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국민의 재산이란 시장경제 질서유지 범위 내에서만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금융기관이 계열사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해 실질적으로 경쟁제한행위를 했다면 당연히 이에 대한 제한을 가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공정거래법은 실질적 경쟁제한 행위가 없다하더라도 일정한 범주에 속하기만 하면 일괄적으로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다. 선진 각국 중 그 어느 나라도 독점규제법을 통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시키고 금융기관이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을 막는 나라는 없다. 우리와 유사하게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정책을 펴고 있는 미국,일본도 실질적으로 경쟁을 제한하거나 독점을 형성한 경우에 한해서만 의결권 제한을 가하고 있으며 유럽은 아예 유니버설 뱅킹 시스템하에서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인지 오래다. 특히 규모면에서 미국의 1%도 안되는 우리의 자본시장을 고려해 볼 때 미국식보다는 유럽식처럼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의 조달자 역할도 병행해야만 자본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러한 우리경제 현실을 외면한 채 획일적 잣대로 금융기관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는 반시장 경제정책을 펴고 있다. 현재 우리 자본시장에는 뉴브리지 캐피털과 같은 사모투자펀드사들이 우리 기업들을 인수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소버린과 같은 자산운용사들이 우리가 일군 대기업들의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 금번 개정안을 보면서 과연 우리 공정위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국가기관인지 의아한 생각마저 든다. /기업소송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