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는 '군림하는 사대부' 꿈꿨다..'선비의 배반'

끊임없는 자기 수양을 통해 청렴,강직,절제,무욕의 삶을 추구했던 사람.문(文)·사(史)·철(哲)에 시(詩)·서(書)·화(畵)를 겸전했던 사람.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개를 굽히지 않고 소신을 지켰던 사람.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 '선비'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소장 역사학자 박성순 단국대 겸임교수(35)는 이런 기존 선비상에 반대한다. 국학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학계가 만들어낸 일방적 미화에서 벗어나 선비들의 역할과 행태를 객관적으로 보자는 것.그가 쓴 '선비의 배반'(고즈윈)은 이런 시각에서 접근한 선비 비판서다. 박 교수는 선비들이 공부했던 성리학이 심신수양에 그치지 않고 왕권을 억압하는 한편 백성 위에 일방적으로 군림하는 사대부 독존의 사회체제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무기였다고 규정한다. 이를 구명하기 위한 시금석은 사림파 성리학자들이 강조했던 '심경(心經)'이다. 사림파들은 '심경'을 경연 과목으로 채택,도덕적 규범으로 국왕을 옭아매려 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조광조 이후 중앙으로 진출한 사림들이 중앙 권력의 향촌 확산을 막는 한편 향약 등의 조직을 통해 향촌사회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던 사실에 저자는 주목한다.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들이 위훈(僞勳) 삭제 등을 요구하며 훈구파의 도덕성을 비난했지만 이는 향촌에서의 기득권 유지와 중앙 정계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또 송시열은 겉으로는 북벌(北伐)을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사사건건 북벌에 반대했으며 사대부 중심의 사회를 만들려는 저의를 갖고 있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고려말의 개혁정신을 이끌었던 성리학이 조선 중기 이후 변질되기까지 정몽주 이색 정도전 조광조 송시열 조식 등 쟁쟁한 선비들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보인 행태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선비상과 선비정신을 긍정적으로 서술한 서울대 정옥자 교수의 '우리 선비'(현암사)와 비교하며 읽어도 좋을 듯하다. 2백62쪽,1만1천8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