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부터 후진타오까지 경제철학 어떻게 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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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의 경제정책은 계급투쟁의 연장선에서 마련됐다.
그는 1949년 공산중국 건설 이후 급진주의식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사회주의 과정을 하루빨리 끝내고 공산주의 시기로 진입하려는 의욕이었다.
이 과정에서 지난 50년대 초 군중의 혁명적 열의를 경제에 투입하려는 대약진(大躍進)운동이 시작됐다.
대약진운동은 그 모험성으로 인해 철저히 실패했고,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다.
이 기간(10년) 동안 중국 경제는 또다시 철저히 유린됐다.
제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의 경제정책은 경제력 증강만이 살 길이라는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으로 요약된다.
계급투쟁식 경제정책으로부터의 급선회다.
덩샤오핑은 "우리는 지금 사회주의에서도 초급단계에 있을 뿐"이라며 "앞으로 1백년 동안 생산력 발전에만 매진하라"고 역설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경제발전 이룩하자'라는 구호와 다름없다.
덩샤오핑의 이 노선에 따라 중국은 성장제일주의 경제 노선을 걸었고 문을 활짝 열어 외국기업을 끌어들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라면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불평등,불균형 발전도 용인됐다.
'먼저 부자가 돼도 좋다(先富起來)!'라고 선언한 것이다.
제3세대 지도자 장쩌민의 경제노선은 '3개대표(三個代表)'로 요약된다.
공산당이 생산력,선진문화,광범위한 대중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이 중 '공산당이 광범위한 대중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논리에 따라 그동안 소외됐던 민간 사영기업,자본가,외자기업 등도 공산당이 지켜야 할 경제주체로 등장했다.
이 정책에 따라 중국에서 민영기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됐고,사유재산 보장이 헌법에 명시되기도 했다.
민영경제의 성장으로 중국 경제는 더욱 빠른 성장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제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 체제의 '과학발전관'은 이 같은 경제정책 발전 과정을 거쳐 등장하게 된다.
올 초 공식적으로 등장한 과학발전관은 '개혁개방시기 지속돼온 성장 제일주의가 낳은 부작용을 해소하자'는 게 뼈대다.
덩샤오핑은 아랫목을 먼저 덥히면 윗목도 따듯해질 것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도농지역 간,소득계층 간 빈부격차는 오히려 심화됐다.
여기에 황금만능주의가 횡행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또 비과학적인 성장제일주의로 원자재 품귀,경제과열 현상이 일어나는 등 경제가 충격을 받고 있다.
이 같은 부작용을 해소하자는 것이 과학발전관의 뜻이다.
균형발전 및 조화로운 성장,사람이 중심이 되는(以人爲本) 자본주의,지속 가능한 발전 등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는 현재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긴축정책 기조에 흐르고 있는 경제철학이기도 하다.
후 주석은 더욱 강력한 지도력을 갖추게 됨에 따라 과학발전관을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지금 세계는 그가 추진하는 조화로운 발전이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주목하고 있다.
상하이=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