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후진타오 시대 아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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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장쩌민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지난 19일 폐막한 제16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16기 4중전회)에서 군사위 주석직을 사임했다.
후임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후진타오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가 승계했다.
군사위 주석직 세대교체 과정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격상시키기 위해 장쩌민 주석과 '악마의 협상(devil's bargain)'을 벌였으며,그 결과 중국의 정치개혁 전망은 더욱 암울해졌다고 평가된다.
올해 나이 78세의 장쩌민에게 후진타오와의 협상은 한마디로 달콤한 것이었다.
장쩌민은 은퇴한 정치 지도자로서,막후에서 편히 쉬면서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과 같은 반열에 오르는 기쁨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쩌민은 사회주의 이론에도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됐다.
장쩌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와 농민뿐 아니라 기업가 과학자 문화예술인도 대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으며,그의 이같은 사상은 사회주의 규범으로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보답으로 장쩌민은 후진타오에게 군사위 주석직을 물려 주었다.
장쩌민이 자진해서 물러났다는 점에서 후진타오가 군사위 주석직을 승계했다고 하더라도 중국 정부 정책상의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방 세계는 이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군사위 부주석으로 임명될 것으로 예상됐던 쩡칭훙 국가 부주석이 예상과 달리 군사위에 합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장쩌민의 최측근이었던 쩡칭훙은 이른바 강경론자에 속하는 '상하이방(幇)'의 대표적 인물.만약 그가 군사위 부주석 자리를 차지했다면 대만이나 홍콩 문제는 물론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갈등 양상이 초래될 것으로 우려됐었다.
어쩌면 장쩌민은 공산당 내부에서 인기가 없는 쩡칭훙을 군사위 부주석으로 승격시키는 데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 대안으로 장쩌민은 자신에게 충성스런 4명의 군장성을 군사위에 배치하는 선택을 했다.
장쩌민이 임명한 우방궈 전인대상무위원장,자칭린 정협주석,황쥐 부총리,리창춘 당기율검사위원회서기 등 상하이방 멤버들은 여전히 최고 권력층을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정치의 이같은 배경을 인식한다면 후진타오의 권력이 얼마나 미약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2년 11월 이후 공산당 총서기란 직함이 그에게 붙어 있었지만 후진타오는 쩡칭훙의 권력에 눌려 제대로 된 개혁을 보여주지 못했다.
중국 내 정치 개혁은 뒷걸음질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후진타오가 추진하던 정치 개혁은 '공산당의 지배력 강화'로 그 의미가 변질됐다.
후진타오는 최근 들어 공산당의 정통 교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비쳐지는 정책은 철저히 회피하려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2년 전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했을 때 후진타오는 "중요한 문제에 봉착하면 장쩌민 주석의 말씀을 경청해 그대로 따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내부로부터 강력한 민중봉기가 발생하거나 미국을 비롯한 외부 세계의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중국에서 정치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군사위 주석직이 후진타오에게로 옮겨졌지만 '진정한 후진타오의 시대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리=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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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존 타시크 연구원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Hu's Faustian Bargain'이란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