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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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돌아오면 마음부터가 넉넉해진다.
천고마비의 절기에 햇곡을 거두고 온갖 햇과일이 나와 풍성해지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하는가 보다.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도 계절과 어울려 실감이 난다.
농경사회에서 유래된 추석은 우리 고유의 명절로 중추절(仲秋節) 또는 한가위라고 한다.
중추절은 음력으로 가을을 초추(7월) 중추(8월) 종추(9월)로 불린데서 붙여진 이름이고,한가위란 8월 중에서도 가장 크게 한 가운데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여러 명절이 있지만 추석은 우리에게 각별하게 다가온다.
넉넉한 나눔의 미덕이 소록소록 배어나고 풍물놀이 등으로 온 동네가 흥겨움에 들뜬다.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가리지 않고 배불리 먹고 즐겁게 노는 축제의 한마당이다.
그런데 올해 추석은 전에 없이 우울한 분위기인 것 같다.
과거사 청산, 국가보안법 철폐, 행정수도 이전 등 대형 이슈들이 불거져 어느 하루 편한 날이 없을 지경이며,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노동문제는 우리 사회를 옥죄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상인들은 추석 대목경기가 실종됐다고 울상이며,서민들은 생활이 갈수록 궁핍해진다며 여기저기서 불멘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듯 정부는 귀성객들에게 '꿈을 드린다'를 팸플릿을 대량으로 제작해 배포하고 있는데 3년 후의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경제기반이 튼튼해 경제회복에 대한 자신감이 문제지 우리 사정이 결코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민족대이동이 시작되면서 얄팍한 지갑 탓에 귀향길 손이 허전해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민망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풀이 죽을 일은 아니다.
고향의 넉넉한 인심을 느끼며 희망을 그릴 수 있어서다.
성묘를 하며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일가친척을 만나 훈훈한 옛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고향을 찾는 의미는 충분하다.
휴식과 축제가 어우러지는 추석에 한숨으로 송편을 빚지 말고,소망과 의지를 담은 송편을 빚어 이웃과 나눠보자고 권하고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