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시안화나트륨 北반입 파장] "화학무기원료 대준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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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수출통제품목인 한국산 시안화나트륨이 지난해 중국에 이어 최근에는 말레이시아를 경유,북한에 대량으로 흘러들어간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는 등 전략물자 수출통제 시스템 운용에 잇달아 '구멍'이 뚫리고 있다.
특히 정부는 지난해 국내 기업이 중국에 시안화나트륨 1백7t을 불법 수출했고,전량 북한에 재수출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그 내용을 지금까지 감춰오는 등 '정보 보안'에 급급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하고 있다.
◆구멍 뚫린 통제시스템
현재까지 북한으로의 유입이 확인된 한국산 시안화나트륨의 규모는 총 1백22t이다.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국내 A사가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중국을 경유해 북한에 수출한 1백7t과 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말레이시아 경유 북한 수출분 15t을 합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적발된 북한 수출 물량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많다.
지난해 중국으로 수출된 한국산 시안화나트륨은 무려 1만5천9백59t에 이르기 때문이다.
동남아 국가 등 제3국에 수출된 물량을 합치면 북한으로 불법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규모는 더 불어난다.
북한이 한국산 시안화나트륨을 사들여 무엇에 사용했는지도 큰 의문거리다.
시안화나트륨은 금속 제련과 제초제 원료 등 산업용으로 쓰이지만,맹독 가스인 신경작용제 타분의 원료로 전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관측대로 북한이 타분 생산용으로 사용했을 경우,한국은 군사대치 상황에 있는 북한에 살상무기 원료를 고스란히 대준 셈이다.
◆국제적 파장 여부에 관심
핵개발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는 북한에 맹독성 가스의 원료를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공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지 않은 국제적 파문이 우려된다.
특히 한국 정부의 전략물자 통제시스템이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냈다는 점은 상당한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국제 다자간 수출통제체제는 지난 1949년 냉전시대 공산권 국가를 대상으로 설립된 '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가 시초다.
이후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대량파괴무기(WMD)와 관련된 품목 등에 대한 수출통제 목적으로 수출통제체제를 잇따라 설립,운영하고 있다.
대표적 국제수출통제체제는 △원자력비확산체제인 핵공급국그룹(NSG)△생화학무기비확산체제 호주그룹(AG)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재래식무기 기술통제체제인 바세나르협정(WA) 등이다.
지난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한 이후 WMD 등 수출통제체제가 국제안보 분야의 핵심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시안화나트륨은 화학무기로 전용이 가능한 물질의 수출과 제조기술 이전을 금지하는 생화학무기 수출통제 체제인 호주그룹이 수출통제 품목으로 지정한 화학원료다.
한국을 포함해 모두 33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으며,북한 이라크 등 생화학무기 개발 우려가 높은 국가를 수출제한 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기업들 '무(無)감각'도 문제
현재 전략물자로 관리되고 있는 품목은 총 1천9백93개에 이른다.
화학물질은 물론 일반가정용으로 사용되는 디지털카메라 모니터 등도 수출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전략물자로 분류돼 있다.
모니터 등이 미사일유도장치 시스템 등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3만9천여개 기업에서 디지털비디오레코더(DVR) TV 정밀기기 등 수출 통제대상 품목을 7백20억달러(1백40만건) 수출했지만 정부 허가를 받은 건수는 전체의 5.5%인 4백77건(약 40억달러)에 불과했던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수출규모가 큰 대기업조차 수출시 정부허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