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금융에서 풀자] (下) 선진국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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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회사는 예금및 대출업무에 치중하는 전통 상업은행,기업금융에 치중하는 투자은행,보험회사등으로 나뉜다.
증권회사는 소형 브로커외에는 투자은행 범주로 들어간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1,2 금융권이라는 용어는 없다. 자연히 1,2란 구분에서 풍기는 2금융권의 열위는 찾아볼 수 없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본을 조달해서 기업에 공급하는 이른바 산업의 파이프라인 역할은 투자은행들이 주도하고 있다.
일찌기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에서 이 시장을 움직여온 선수들이 투자은행들이기 때문이다. 은행으로 불리지만 한국식 은행과는 거리가 멀다. 증권업을 하는 은행을 투자은행으로 보면 된다.
그들이 하는 일은 크게 네 가지다. 전통적인 증권 브로커 업무,조사 업무,주력인 투자은행 업무(주식 및 채권 인수,인수합병 주선 등 금융서비스 업무),개인자산관리 업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에는 개인자산관리 업무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부유층을 상대로 한 자산관리 업무를 늘리고 있다. 상업은행들도 이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개인자산관리업무가 하나의 유행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산업발전의 원동력이 된 철도와 운하 건설,영국과의 전쟁이나 남북전쟁에 들어가는 전비 마련에도 투자은행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금값이 폭락,경제위기가 초래됐을 때 금값을 유지하면서 사실상 중앙은행의 역할을 했던 것도 투자은행인 JP모건이었다. 월가 하면 떠오르는 금융회사도 대부분 투자은행들이다. 골드만 삭스,모건 스탠리,메릴린치,JP모건 등 하나같이 대형 투자은행들이 월가를 움직이고 있다.
우수한 인재들도 투자은행을 상대적으로 선호한다. 한국관련 업무를 하는 한 변호사는 "80년대 중반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경제 경영학과 학생 중 상업은행에 들어가기 위해 인터뷰를 한 학생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며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유럽이 한 금융회사 안에서 은행 증권 보험업무를 백화점식으로 다 할 수 있지만 미국은 은행업무(상업은행)와 증권업무(투자은행)가 90년대 후반까지 분리됐었다. 이른바 '글래스 스티걸'이라는 법에 따라 방화벽이 쳐 있어 상대방의 영역을 넘나들지 못했던 것이다. 이 법이 철폐된 것은 99년 11월이다.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자회사를 통한 겸업이 허용됐다.
하지만 글래스 스티걸법은 80년대 말부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유연한 해석에 의해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대표적인 게 씨티그룹의 탄생이다. 씨티그룹은 투자은행인 살로먼 스미스 브러더스를 갖고 있던 보험사 트레블러스가 전통 상업은행인 씨티코프를 합병해서 탄생한 세계 최대 금융회사이다. 은행과 증권업 보험업의 통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합병이 이뤄진 것도 글래스 스티걸법이 철폐되기 전인 98년이다.
합병의 주역은 당시 트레블러스 회장이었던 샌디 와일 현 씨티그룹 회장이다. 그는 씨티코프를 인수함으로써 그 은행이 확보하고 있던 막강한 카드 고객들에게 살로먼 스미스 바니의 뮤추얼펀드를 판매할 수 있고,씨티는 트레블러스의 보험 네트워크를 통해 카드 회원을 더 확장하며 기업고객에는 기업 금융업무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갖고 있었다. 판매주체나 영업주체는 다르고 계정도 별도로 운영하지만 상호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는 실질적인 복합금융을 추진한 것이다.
연쇄적인 합병을 통해 탄생한 JP모건 체이스도 마찬가지다. 체이스 은행 지점에 가면 JP모건의 뮤추얼펀드를 살 수 있다. 전통 상업은행이 비은행 업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금융업종 간 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