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쟁력을 높이자] <1> 기업이 국가다..기업인이 존경받는것 당연

'북유럽의 베니스'로 불리는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푸른 발틱해가 내려다 보이는 시내 한켠에 빨간 벽돌로 지은 3층 짜리 시(市)청사가 있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 축하연이 열리는 곳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이 시청사 건물 2층 복도 한복판엔 청동으로 만들어진 흉상 하나가 있다. 주인공은 스웨덴 최대의 재벌인 발렌베리그룹의 2대 회장 K.A.발렌베리(1853~1938). 시 청사 건물에 왠 재벌의 동상일까. "1923년 이 건물을 지을 때 모자라는 예산을 발렌베리가 댔다. 그 감사의 표시로 그의 흉상을 만든 것이다. 재벌의 동상을 스톡홀름의 상징인 시청사 안에 세워 놓았다고 해서 곱지 않게 보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발렌베리는 이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중 한 명이자 자랑거리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될 게 없다." 현지 안내인의 설명은 명쾌했다. 기업인이 국민적 사랑을 받고,반기업 정서가 아니라 '친기업 정서'가 넘치는 나라. 이것이 유럽 강소국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다. 정치적으론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 색채가 짙지만 기업가와 기업은 질시가 아닌 신망의 대상이다. 지난 7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보자. '기업에 대한 신뢰' 부문에서 1위는 유럽 강소국의 간판 핀란드가 차지했다. 2위는 덴마크,3위는 오스트리아로 상위권을 유럽국가들이 휩쓸었다. 한국은 몇 위일까. 총 60개국 중 51위였다. 유럽 강소국에선 각 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에 경제력이 집중돼 있지만 '집중 완화' 주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공정거래법이나 증권거래법상 규제도 당연히 없다. 오히려 '선택과 집중'이란 논리 아래 이들 기업은 국가경제의 버팀목으로 각광받는다.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핀란드의 노키아,네덜란드의 필립스 유니레버 등이 그렇다. 실제로 세계적 정보통신 기업인 노키아는 핀란드 총수출의 20%,증시 시가총액의 60%를 차지한다. '핀란드에선 대통령 총리 다음으로 힘센 사람이 노키아 최고경영자(CEO) 요르마 올릴라'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노키아의 힘을 빼야 한다'는 주장은 나오지 않는다. 핀란드경제연구소(ETLA)의 파시 소르요넨 경제분석팀장은 "핀란드 경제력이 노키아에 집중된 게 문제가 아니라,오히려 노키아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핀란드에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오너십을 인정하고 경영권을 보호해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네덜란드는 창업주 후손 등이 경영권을 가질 수 있도록 지배주(priority share)라는 특별주식을 인정해 준다. 필립스의 경우 오너가 1백년 이상 단 10개의 지배주를 갖고 경영진 선임은 물론 경영 전반을 통제해 왔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일반주식에 비해 10배의 의결권을 갖는 차등주를 제도화해 경영권을 보호해준다. "경영권을 보장해 줄 테니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 등은 걱정 말고 기업이나 열심히 키우라는 배려다."(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 헤슬링 이사) 기업에 대한 이 같은 전폭적 후원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우선 국민들의 실용적 사고방식이다. "기업이 잘 돼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많이 내 복지가 향상되면 결국 국민에게 이익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정영조 주스웨덴 한국대사) 또 기업들 스스로 사회공헌 활동 등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큰 요인으로 꼽힌다. 발렌베리 재단의 경우 매년 약 1억달러의 기부금을 공적인 교육과 연구개발(R&D)에 지원한다. 게다가 발렌베리가(家)는 스톡홀름에 있는 고급 휴양 별장을 사용하지 않을 땐 비워두지 않고 회사 직원들에게 빌려준다. 그만큼 재벌에 대한 반감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다. 핀란드가 지난해 반부패지수 1위 국가로 꼽힌 것이 입증하듯 기업의 투명경영은 기본이다. 물론 유럽 강소국의 경우 복지비용 때문에 세금부담이 크다는 점 등 기업애로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규제 없이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할 수 있다는 기업친화적 환경은 기업들에 최대의 매력 요인임에 틀림없다. 이런 친기업적 토양이 기업 경쟁력을 키우고,결국 유럽 강소국들의 국가경쟁력을 강하게 만든 원천인 셈이다. 스톡홀름·헬싱키=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