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금융軸은 자본시장이다

한 대형 증권사 사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화두 하나를 꺼냈다. "은행들이 저마다 증권업을 하겠다는데 어떤 효과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은행들이 '증권업 겸업'으로 시너지효과를 낸다지만 과연 효과가 있을지 아리송하다는 얘기였다. 혹여 B가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A가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 행동은 생각과 달리 A를 택하고 만다는 '밴드웨건(bandwagon)이펙트'는 아닌지 의문이 간다는 얘기도 했다. 은행 대부분이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돼있는 만큼 지주회사가 금융 전부문에 계열사를 두는 것이 모양에 맞고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더 이상의 부실을 막기 위해 41개나 되는 증권사를 줄이겠다는 정책적 고려도 물론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은행을 축으로 한 금융산업의 틀은 이제 재고돼야 할 때다. 무엇보다 '증권화'와 '금융회사의 투자기관화'로 압축되는 세계금융시장 흐름과 맞지 않는다. 세계금융시장은 은행이 아니라 골드만삭스 JP모건같은 증권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이라는 공격적인 투자성향을 갖고 있다. 반면 은행은 자산운용의 안정성이 최우선이다. 은행이 덩치를 아무리 키워도 기업금융(IB)같은 리스크가 따르는 투자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90년대 초 산업은행이 만든 산업증권의 실패는 은행과 증권의 물리적 결합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다. 이제까지 금융산업 정책의 초점은 은행의 일방적인 영역 확대를 통한 '몸집불리기'에 맞춰져왔다. 그 결과 2금융권은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증권시장에서 은행은 증권사 상품과 다를 게 없는 금융상품과 수익증권을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 주식투자자까지 독자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은행에 증권계좌를 둔 주식투자자 수는 전체의 9% 정도에 이른다. 보험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1차 방카슈랑스로 은행에 저축성보험 판매가 허용된 작년 9월 이후 올 8월 말까지 1년간 은행이 판매한 보험건수는 전체의 65%나 된다. 한때 가전업체 구직자들에게는 "알래스카에 가서 냉장고를 팔아오겠다"라는 답변이 필수적이었다. 영업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금융회사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은행은 어떤가. 요즘 은행은 기업대출,그것도 현금이 넉넉한 우량대기업에 대출해가라고 요청할 때 외에는 발품을 팔 일이 거의 없다. 적금이든 증권계좌든 보험이든 뛰고 찾아오는 쪽은 고객이다. 은행은 가만히 앉아서 영업하는 셈이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취임 당시 일각으로부터 '증권사 사장 출신이 은행장을 잘 하겠느냐'는 시샘어린 우려를 사기도 했지만,얼마후엔 '그만한 사람이 없다'는 완전히 달라진 평가를 받았다. 그는 비결을 묻는 지인들에게 "나는 뛰는 증권사에서 일했지만,은행은 앉아서 일하더라"고 함축적으로 대답했다고 한다. 정부는 이제 더 이상 2금융권을 '위험하고 신뢰할 수 없는 금융회사'로 방치해둬서는 안된다. 은행에 증권과 보험을 몰아주는 식의 은행중심사고와 정책으로는 금융회사와 금융시장을 키울 수 없다. 은행 자금이 기업에 돌아가지 않는 '돈맥경화'현상도 은행이 본업아닌 부업에서,그것도 앉아서 영업해도 살이 찔 수 있게 만들어준 지금의 금융산업 틀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지금은 저축보다 투자에 힘을 실어줘야 할 때다. 금융산업개편은 그래서 필요하다. 문희수 증권부차장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