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특구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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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특구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제특구에 이어 이번엔 연구개발(R&D)특구가 그렇다.
국내외적으로 알려진 한국의 대표적 연구집적지가 대덕이다.
그런 대덕을 R&D특구로 육성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안)을 정부가 입법 예고했지만 지금 산으로 가고 있는 건지,강으로 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정부는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여기에 일부 정치인들이 정치적·지역적 이해를 내세우면서 문제가 더욱 꼬이는 양상이다.
민주노동당은 특구개념 자체를 반대한다.
반면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대구 등도 R&D특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전 대구 광주를 잇는 삼각 R&D벨트 제안까지 나왔다.
광주 등에 연고가 있는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도 동조하고 나섰다.
일이 그렇게 번지자 포항이 발끈했다.
왜 우리는 빼냐고.그러자 이번에는 강릉이 들고 일어났다.
다른 지역도 가만 있지 않을 태세다.
전국이 R&D특구가 될 수만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혹자는 특정지역을 특구로 지정하는 것 자체가 구(舊)시대적 발상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특구 자체를 반대하는 민노당은 대단히 신(新)시대적인가.
민노당은 특구 반대논리로 외국자본 유입과 노동·교육관련 규제 철폐 등으로 인한 폐해를 거론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것이 민주노총 전교조 등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세력의 기득권 고수와 무관하다고 보지 않는다.
일정한 기준을 제시,충족하면 어느 지역이든 R&D특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또 어떤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기준을 엄격히 설정해 해당되는 곳이 대덕뿐이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날까.
그렇지 않을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이런 주장 역시 정치적·지역적 이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대구도 R&D특구로 해 달라고 했다면 차라리 솔직하다는 말이라도 들었을지 모른다.
광주와 연계한다는 얘기까지 들리고 보면 너무 속 보인다는 평이다.
R&D특구 자체를 반대하는 것과 모든 지역이 R&D특구가 될 수 있게 하자는 것은 극과 극을 달리는 주장 같지만 결과에 있어선 하등 다를 게 없다.
어느 지역도 제대로 된 특구가 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 사회의 서글픈 단면이다.
더 웃기는 건 여당이다.
선거만 끝나면 그만인가.
총선 공약은 지역적 이해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대덕 R&D특구법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과학기술부가 주도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왜 대덕만 R&D특구여야 하느냐는 반문에 설득력있는 답변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자신들이 그토록 집착해왔던 분산과 균형의 덫에 스스로 빠져버린 꼴이다.
과기부도 딱하다.
지역혁신클러스터는 산업자원부 몫이지만 대덕은 국가적 상징성 때문에 과기부가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특구다운 특구를 만들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말로만 선택과 집중을 떠들뿐 그럴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커져가고 있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특구도 아닌 보통구로 만들 바엔 차라리 대덕을 산자부에 넘겨주는 게 낫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덕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한편에선 그걸 노리고 있는 게 산자부란 소문도 있고 보면 허무해지고 만다.
이것이 대덕 R&D특구법이 처한 지금의 현실이다.
대덕 연구단지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30년이 걸렸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모두가 R&D특구에 대해 환상만 심어주고 있을 뿐 수반돼야 하는 인내와 고통은 도외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공사례 하나를 위해 우리는 30년을 더 기다려야만 하는가.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