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新惡'이 '舊惡' 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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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국정감사를 지켜보노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16대 국회로 돌아간 느낌이다.
변화와 개혁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며 출발한 17대 국회가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정쟁으로 4년을 허송한 16대 국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최소한의 '정치금도'마저 무너졌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7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는 거꾸로 가는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 자리였다.
옆에 앉은 동료의원을 향해 '스파이'라는 극단적인 용어를 거리낌없이 구사한 의원,이를 빌미로 감사는 뒤로 한 채 감정싸움으로 하루를 허송한 선량들,하염없이 빈 회의장을 지키는 피감기관 관계자들.
무려 12시간을 기다린 피감기관이 받은 질문 시간은 고작 10여분이었다.
영락없는 16대 국회의 비디오테이프다.
정치권의 '구태 재연'은 국방위뿐만 아니다.
상당수 국감장이 이미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관제 데모' 시비와 교과서 편향 집필 논란,군사기밀 유출 문제 등을 둘러싼 여야간 정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민생·경제에 전념하겠다는 여야 지도부의 약속은 공염불이 됐다"는 시민단체의 비판은 당연한 결과다.
당리당략 싸움에 국감 전 그토록 외쳤던 정책국감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막가파식' 대결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8일에도 각기 상대당 의원들을 국회 윤리위에 맞제소하는 등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남은 2주간의 국감도 별로 기대할 게 없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쯤되자 정치권 주변에서는 "신악(新惡)이 구악(舊惡)을 뺨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초선 의원이 1백87명에 이르는 등 새로운 사람들로 국회가 채워진 만큼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행태는 과거와 다를 게 없다"는 국민의 비판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이재창 정치부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