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골드만삭스 악연 파문] 前진로 변호사 "진로 농락 당해"

소주업계 1위 진로가 부도 후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은 해외 투기자금의 횡포를 차단하지 못한 법 제도상 허점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2001년 말부터 2003년 6월까지 진로의 국제변호사로 활동한 피터 고(고형식) 변호사는 7일 금융노련에서 열린 투기자본감시센터 주최 세미나에서 골드만삭스의 '진로잡기'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당시 골드만삭스가 진로의 비공개 내부 정보를 이용해서 진로 채권을 낮은 가격에 매입해 큰 차익을 얻었으며 결국 채권자로서 진로를 법정관리에까지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이미 법정에서 결론이 난 것으로 부실경영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반박, 논란이 일고 있다. ◆구조조정 컨설팅 계약 고 변호사에 따르면 진로는 골드만삭스를 너무 믿은 것이 탈이었다. 1997년 부도와 화의신청 등으로 위기에 몰린 진로가 1998년 11월 구조조정 컨설팅 등을 위해 골드만삭스를 찾은 게 파산절차로 가는 첫 단추였다는 것이다. 당시 진로는 화의계획에 따라 5년 내 자산매각 등 구조조정을 해야 했고 그러지 못하면 파산할 수밖에 없는 다급한 처지였다. 쫓기던 진로는 국제적 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영업 재무상황 등 핵심 기밀정보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골드만삭스와 구조조정 컨설팅 계약을 1997년 11월 맺었다. 진로의 동의 없이 비밀정보를 다른 목적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비밀유지조항도 넣었다. 이후 골드만삭스는 진로의 구조조정계획,자산,재정상태,현금흐름 등 내부 미공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골드만삭스는 진로가 변제능력이 충분한 알짜회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밀입수 뒤 채권매입" 고 변호사는 "회사기밀을 알고 채권변제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골드만삭스는 딴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로의 화의계획이 승인된 1998년 3월 이후 골드만삭스는 자산관리공사와 국내 금융기관 채권자들에게서 진로 채권을 매집했다. 당초의 진로 자산매각주간사 자문계약에는 응하지도 않았다. 진로 채권 1차 공매 때는 액면가의 5%에 낙찰받기도 했다. 이후 15∼20% 수준에서 매입했다. 골드만삭스는 진로재팬과 홍콩법인을 잡기 위해 1998년 10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진로홍콩 변동금리부채권(FRN) 2천8백만달러어치도 매입했다. 진로홍콩은 고수익을 내고 있던 진로재팬의 모회사였다. 이렇게 해서 골드만삭스가 매입한 진로채권은 3천5백억∼4천억원 정도였다. ◆투자액 회수 후 진로 파산 신청 골드만삭스는 2000년 6월 당시 화의 상태였던 진로의 자회사인 진로건설과 진로식품에 대해 파산을 신청,진로 자산을 인수하려던 잠재적 경쟁자를 털어냈다고 고 변호사는 주장했다. 진로채권을 충분히 확보한 골드만삭스는 진로 자산 매각을 막아 자산을 묶어두기 시작했다. 2001년 1월 진로재팬 매각을 막았다. 2002년에는 진로재팬 상표권도 압류했다. 채권과 자산확보가 끝나자 골드만삭스는 작년 4월 진로에 대한 법정관리를 전격 신청했다. 골드만삭스는 진로채권 이자로 투자금액을 거의 회수한 상태였고 진로를 매각해 더 많은 투자이익을 거두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술한 법이 문제 진로가 골드만삭스의 공격에 넘어간 것은 허술한 국내 법도 한몫 했다고 고 변호사는 지적했다. 진로는 2002년 3월 비밀유지협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골드만삭스 보유 진로 채권의 무효를 주장했다. 그러나 컨설팅팀과 채권투자팀의 상호정보 교류가 차단된 구조라는 설명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진로는 그럴 리 없다고 주장했으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골드만삭스는 페이퍼 컴퍼니도 십분 활용했다. 진로의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이 해외에 있고,한국 내에 사무소나 직원이 없어 싸워보지도 못했다. 법원도 관할권이 없다는 이유로 진로의 숱한 주장을 기각했다. 이에 대해 고 변호사는 △한국 내 사무소와 직원을 두지 않았더라도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국민에게 직접적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하며 △채권자로서 한국법의 수혜를 받는다면 그 외국회사와 직원은 한국법원의 관할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