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KTX 단상 ‥ 최순자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 회장>

지난주 한국고분자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동대구까지 한국고속철도(KTX)를 타고 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봄·가을에 열리는 논문 발표 중 한번은 지방에서 열리게 되므로 회색 시멘트 건물을 멀리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동대구까지 달려갔다. 걸린 시간은 1시간44분. 4명의 제자가 발표하는 이번 학회 준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바쁜 일정 때문에 꼭 벼락공부하는 학생처럼 이루어졌다. 박사과정에 있는 2명의 구두 발표 리허설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출발하기 바로 전날 점심시간에 연구실 식구 모두가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며 이루어졌다. 지난 6개월 동안 열심히 연구한 결과는 그런대로 준비를 잘해 커다란 수정 없이 통과됐고,고속철도가 개통한 이후 어느 누구도 KTX를 타보지 않았다기에 대구행은 전원 KTX를 이용하기로 했다. 10여년 전 내가 프랑스에 있을 때 이용해 본 테제베(TGV)와 별다르지 않았지만,좌석의 앞·뒤 길이가 짧고,의자 등받이를 뒤로 밀 수 없어 불편했다. 차창 밖으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가을의 절정을 알리기에 흡족한 누런 벼이삭과 붉게 물든 감나무가 도심 속을 떠난 우리들의 눈과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박사과정 여학생들의 발표가 끝난 후,여러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 그들이 평소 쌓아온 과학적 기초지식과 전공 학식을 활용함으로써 학생들의 총기와 현명함이 돋보였다. 특히 우리의 연구테마에 대해 관심이 많은 기업체 관계자가 학생들에게 박사 몇 년차냐고 물어왔을 때는 학생들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된 것 같았다. 이공계 전공자들의 논리적 표현과 발표능력이 부족하다는 최근 매스컴의 지적을 상기해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연구결과와 발표 능력을 보여준 학생들이 자랑스러웠다. 과학·기술적 사고와 학식은 평소의 연구에 의한 통찰력으로 축적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 이번 학회 참석은 학생들에게도 스스로 자긍심을 갖는 기회가 됐다. 돌아오는 KTX 차창 밖의 풍경은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화창한 가을 날씨와 조화를 이루며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