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산업은행이 이상해지고 있다

尹暢賢 불특정 다수에게 예금으로 돈을 받아서 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자금필요자에게 대출로 제공함으로써 돈이 흘러가도록 하는 금융행위를 간접금융 혹은 상업금융이라 한다. 반면 자금수요자가 채권이나 주식을 시장에 팔아 돈이 흘러가도록 하는 금융을 직접금융이라 한다. 이때 유가증권을 매입하는 행위는 투자행위가 되므로 직접금융은 흔히 투자금융으로도 불린다.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경우 이를 기업금융 혹은 도매금융이라 하고 가계에 자금을 공급하는 경우 가계금융 혹은 소매금융이라 한다. 또 낙후된 지역에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발금융,국가가 공공산업자금지원 등을 통해 국내 산업 및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목적으로 정책적으로 행하는 정책금융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금융행위가 존재하고 각각의 금융행위에 대해 특화된 전문기관이 설립돼 설립목적에 맞게 금융행위를 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우리나라에는 이 모든 금융행위를 문어발식으로 동시에 수행하는 회사가 있다. 바로 산업은행이다. 원래 개발자금 지원과 공공산업자금 지원을 통해 국내 산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산업은행은 한국경제의 도약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런데 최근 이 은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04년 5월말 현재 산업은행의 출자회사로 편입된 회사는 총 65개에 이른다. 또 해당 회사 주식의 30% 이상을 보유한 기업도 11개사인데 이들은 산은과 연결재무제표를 통해 손익을 반영하고 있다. 자회사 숫자로만 보면 웬만한 재벌기업 뺨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들 자회사는 대부분 부실기업이다. 산은이 부실기업들의 지주회사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산은이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로 발생한 기업부실처리와 벤처기업 육성이란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그러나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는 건 문제가 있다. 국책은행인 산은을 통해 부실기업 정상화를 시도하다 안되면 세금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식의 관료주의적 편의주의의 산물이 아닌가 우려된다. 그뿐인가. 산은은 최근 대우그룹 구조조정 차원에서 떠안았던 대우증권 매각방침을 철회하고 자회사로 유지키로 했다. 지난 6월엔 서울투신운용에 3백억원을 출자해 지분 64.2%를 확보하면서 자회사인 KDB자산운용으로 편입했다. 최근엔 방카슈랑스 영업을 위해 10개의 생보 및 손보사와 제휴를 맺었고 7개 자산운용회사와 제휴해 개인들을 상대로 한 수익증권 판매업무에도 나섰다. 아울러 PB인력을 보강,현재 18개 지점에서 운영하고 있는 'VIP클럽'도 확대,개편해 가고 있다. 부실기업을 포함한 65개의 제조기업 및 금융기업을 자회사로 둔 국책은행이 정책금융 상업금융 기업금융 투자금융에다 이제 소매금융분야까지 본격 진출한다고 할 때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구조인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어발식 확장이 초래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느냐는 우려와 함께 산업과 금융의 분리원칙이 이 은행에 대해선 깨져도 괜찮냐는 질문도 가능하다. 혹시 이런 움직임이 그러잖아도 문제가 되는 금융의 은행 편중현상을 심화시키고 나아가 기업 부실을 국민세금으로 처리함으로써 금융부실을 재정부실로 전가시키는 통로가 되는 건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게다가 산은은 남북경협과 북한 개발에 필요한 투자전략도 수립하고 연구해 상당한 업적을 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만일 상황이 급변해 조기통일같은 상황이 닥치면 북한에 대한 개발금융회사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제 더 늦기전에 이 문제를 건설적 차원에서 점검하고 풀어가야 한다. 검토가 중단된 정책금융과 투자금융의 분리 등을 포함한 다양한 정책 및 개혁방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점검할 때다. 이러한 논의가 선행되지 못하면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인력과 각종 노하우를 자랑하는 이 은행이 예기치 못한 위기를 우리 경제에 초래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