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CEO 열전] (25ㆍ끝) 에필로그 .. 길을 묻는 그대에게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젊은 날의 노력과 헌신이다. 청년기에 자신의 삶과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판가름난다. 삶이 고단할 때,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 문득 회의가 찾아올 때면 흔히들 청년기의 아련한 추억을 되새겨본다. "그래,그때는 참 꿈도 많았는데..."하며 빛바랜 액자 사진 위에 수북히 쌓인 먼지를 닦아내듯이 젊은 날을 반추한다. 우리 시대의 CEO들은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과 고비에서 자신만의 진실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짧게는 20년,많게는 30년을 일해야 맡을 수 있는 자리가 대기업 CEO다. 이들은 젊은 세대에게 한결같이 "야망을 가지라(Boys, Be Ambitious)"는 주문을 한다. 청춘의 질주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사실,아무 것도 없다고 몸소 경험으로 강변한다. 야망없는 자에게는 열정이 없고 준비하지 않은 이에게는 기회가 없다. # 불가능에 도전 CJ그룹의 식품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정진구 대표는 젊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세븐일레븐의 점원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다. 비록 시간당 3달러짜리 하찮은 업무였지만 그는 남다른 집중력을 앞세워 6천8백개에 달하는 미국 전역의 세븐일레븐 운영 매뉴얼을 바꿨다. 낯선 이국땅에서 일개 점원이 손님이 드문 밤 시간을 이용해 빼곡하게 써내려간 업무 개선일지는 훗날 그로 하여금 아시아계로는 처음 본사의 간부가 되게 하는 이정표를 남겼다. 삼성전자의 최지성 디지털미디어 총괄 사장은 80년대 중반 아무도 삼성을 쳐다보지 않던 유럽에서 단신으로 반도체 시장을 개척했다. 무박 이틀짜리 왕복 1천3백km에 달하는 자동차 출장을 밥먹듯 했다. 자동차가 완파되는 사고를 당하고도 기어이 목적지에 도착해 영업을 성사시켰다.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은 상고 출신의 학력으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BMW 본사 임원이 되는 입지전적인 기록을 남겼다. 박찬법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금호 근무시절 중동 영업전선에서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계약 날짜를 맞추기 위해 무비자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입국하다 붙잡혀 감옥에 갇혔는가 하면 80년 인도에선 사막에서 길을 잃고 고립돼 30여시간의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유관홍 현대중공업 사장은 지난 30여년간 새벽에 출근해 밤 늦게 퇴근하는 생활을 일관되게(?) 되풀이한 사람이다. 앞으로 은퇴하고 나면 부인과 함께 텃밭이나 일구면서 "빵점짜리 남편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을 조금이라도 보상해줄 생각"이라고 한다. # 가난을 넘어 상당수의 CEO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그들이 지닌 공통점은 자수성가형 인물들이 갖고 있는 끈기와 오기. 오세철 금호타이어 사장의 경우 고교시절 학교 인근에 천막을 치고 살았다. 친구가 도시락을 대신 싸줬을 정도로 궁핍한 시절을 보냈다. 대학 재수를 할 때는 공원에서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며 학비를 벌기도 했다. 경북 문경에서 맨주먹으로 상경한 황우진 한국푸르덴셜생명보험 사장은 벽돌공장과 골프장 인부 등을 전전하고 급기야 목욕탕에서 때밀이까지 하며 학비를 벌었다. 김순택 삼성SDI 사장 역시 서울 올라올 차비가 없어 지방대에 남았을 정도로 가난했던 기억을 갖고 있지만 업무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똑부러지게 했다. 신헌철 SK㈜ 사장은 어린 시절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고단한 날들을 보내야 했다. 은행에 들어가기 위해 상고에 진학한 그는 20대에 찾아왔던 여러 차례의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국내 최대 정유사의 CEO가 됐다. 배영호 코오롱유화 사장은 어렸을 때 집안의 사업이 기운 뒤 입주 가정교사 등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는 기업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코오롱에 입사했고 지금은 2개 계열사의 사장을 맡고 있다. # 승부처에 돌진하라 직장생활에서 어디가 승부처냐에 대한 정답은 없다. CEO들이 생각하는 승부감각도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고비라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무섭게 돌진하는 힘을 보였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80년대 말 수익성이 떨어지던 냉장고 사업부와 세탁기 사업부를 맡아 특유의 현장 혁신활동을 앞세워 이들 사업부를 잇따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 역시 94년 무선사업 담당 이사를 맡아 한직으로 밀려나는 듯했지만 휴대폰 품질을 강조하기 위해 해외 바이어 앞에서 휴대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칠 정도의 뚝심으로 오늘날 '애니콜 신화'를 열었다. 이상운 ㈜효성 사장은 유학과 직장의 갈림길에서 어릴 적 꿈인 유학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30대 후반 '출세'가 보장된 삼성그룹 비서실을 박차고 나와 통신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인사동 화랑가를 배회하며 4년이라는 짧지 않은 방황기를 겪기도 했지만 끝내 국내 최강의 통신업체 CEO 자리를 꿰찼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줄곧 영업일선에서 일하다가 95년 갑자기 관리담당 임원으로 발령이 나면서 직장생활의 최대 고비를 맞았지만 피나는 노력과 성실한 자기관리를 앞세워 '전업'에 성공했다. 이태용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은 체질에 맞지 않던 은행원 생활을 집어치우고 종합상사맨으로 변신,세계 시장을 누볐다. 이승한 삼성테스코 사장은 삼성물산 해외개발본부장 시절 아들을 잃는 슬픔을 견디며 중동의 공사대금 협상을 순조롭게 마무리지었다. 비교적 굴곡이 심하지 않았던 노기호 LG화학 사장은 하루 하루의 생활에 전력을 투구한 스타일이다. # 꿈을 이룬 사람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반드시 제철보국을 이룬다는 신념 아래 포항의 영일만 공사현장에 청춘을 바쳤다. 과거 공기업으로서 포항제철이 갖던 비중 때문에 회사는 여러 차례의 풍파를 겪었지만 이 회장은 묵묵히 현업을 지키며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당초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지만 대학 3학년때 접한 앤디 그로브의 반도체 이론서 한 권을 읽고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으며 유명한 '황의 법칙'으로 그 꿈을 이뤘다. 이종희 대한항공 사장은 대학시절 항공사에 입사하겠다는 꿈을 안고 일부러 공군을 지원해 군복무를 마친 사람이며 남중수 KTF 사장은 과거 한국통신 근무시절 통신업계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으로 유학을 떠나 한국통신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정상의 일각을 차지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