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서부항만 화물적체 대란] "납기 맞추려 요금 비싼 항공편 이용"

대한항공 서울 화물영업지점은 최근 작업용 면장갑을 항공편으로 미국 서부에 보낼 수 있겠냐는 문의 전화를 받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면장갑은 해상운임에 비해 최고 10배나 비싼 항공운임을 지불하면서까지 수출할 정도로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이 아니어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납기지연을 우려한 일부 화주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기존 수요만으로도 공간이 꽉차 항공사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크다"며 "항공화물 수요가 급증하면서 항공기를 빌려 투입하고 있는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 곧 올 것 같다"고 말했다. 롱비치항의 화물적체 현상으로 크리스마스 성수기를 앞둔 수출 기업들이 납기를 제때 맞추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둔 9∼11월에는 주요 항만이 붐비게 마련.그러나 올해는 아시아발 화물 급증에 현지 항만의 인력부족과 맞물리면서 심각한 하역지연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해운사 도착지 변경 해운사들은 기항지와 최종 도착지를 조정하고 있으나 다른 항만의 사정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애를 먹고 있다. 중국의 톈진 닝보 상하이에서 화물을 싣고 부산항에 도착,지난 9일 로스앤젤레스를 향해 떠난 현대상선 소속의 2천8백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프론티어호'는 최종 도착 예정지를 LA의 롱비치항에서 북서안 타코마항으로 변경했다. 롱비치항에서 극심한 체선 및 체화현상이 빚어지자 해운사 가운데 처음으로 항로를 변경한 것. 현대상선 관계자는 "롱비치항 내에 대기 중인 선박수가 평소의 2배인 80여척에 달해 하역 및 육로수송 시간을 맞추기 위해 도착지를 긴급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진해운 등 국내외 선사들도 오클랜드 시애틀 등지로 도착지를 조정할 예정이다. ◆"롱비치 대신 뉴욕항으로" 해운사들이 미주 서안에서 도착지 변경에 나섰지만 훨씬 먼 동부해안 항로로 화물을 보내달라는 화주들의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롱비치항만에선 하역한 뒤 철도에 환적하는 데까지 최장 10일 이상 걸리자 사바나 웰밍턴 노포크 등을 거쳐 뉴욕항으로 들어가는 미주 동안행 선박에 화물을 실어 달라는 것이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일부 화주들이 동안항로로 계약을 변경할 수 없냐고 문의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성수기여서 화물 실을 공간을 확보하기가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형 수출업체들은 롱비치 시애틀 오클랜드 등 3∼4개 항만으로 수출물량을 분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TV 모니터 냉장고 세탁기 등 휴대폰을 제외한 모든 품목을 배로 운송하는 LG전자는 최근 롱비치항이 적체를 빚자 시애틀항으로 보내는 화물의 양을 늘리기 시작했다. 상반기만 해도 시애틀항 비중이 20∼30%였지만 이달 들어 40%선으로 높아진 것.반대로 60∼70%에 달했던 롱비치항 비중은 50%로 낮아졌다. LG전자는 롱비치항의 적체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항구 대기시간 증가로 인한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판단,계약변경을 통해 동안지역으로 보내는 물동량을 늘릴 계획이다. ◆중소기업,발만 동동 연간 수만TEU의 물량을 해운사에 맡기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들은 선사들에 항로나 선박 변경을 요구하지도 못하는 형편이어서 발만 구르고 있다. 일부 대기업들이야 항공편으로 운송수단을 바꿀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항공편으로 수출하면 운임이 급증,경영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어서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은 롱비치항 적체가 해소되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생산스케줄과 선적을 최장 한 달 정도 앞당기는 방법으로 롱비치 항만 적체에 대응하고 있으나 자칫 '크리스마스 대목'을 놓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류시훈·오상헌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