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언니

미국의 AP통신은 뉴 밀레니엄에 들어선 2000년 2월부터 취재원의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다. 기사를 쓸 때 여성을 의미하는 '미스''미시즈''미즈'를 사용하지 않고 남성처럼 맨처음 언급할 때만 이름과 성을 함께 표기하고,두번째부터는 성만 적는다. 시대가 달라지면 이처럼 호칭이 바뀐다. 70년대 중반까지 통용되던 직장의 '미스터 아무개'는 일찌감치 사라졌고,백화점이나 골프장 가운데는 근래 손님에 대한 호칭을 '고객님''회원님'으로 통일한 곳이 많다. 무조건 '사장님''사모님'하기도 껄끄럽고,그렇다고 사람에 따라 달리 부르기도 어렵자 궁리한 결과일 것이다. 요즘 널리 쓰이는 '언니'라는 호칭의 유래도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당초 미용실 등에서 여자손님을 부르는 용어로 시작된 듯한데 최근엔 유통업과 서비스업 전반에서 손님은 물론 종업원들에 대한 통칭으로 확산됐다. 골프장의 캐디,미용사,식당 종업원,가게 판매원 모두 나이에 상관없이 언니로 불린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언니'는 '동성(주로 여자)의 손위 형제를 이르는 말''남남끼리의 여자들 사이에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높여 정답게 부르는 말'로 돼 있다. 실제 언니는 명칭만으로도 정겹다. 시누이 올케 혹은 동서끼리의 호칭인 '형님'이 다소 멀게 느껴지는데 반해 언니는 한결 가깝게 여겨진다. 그러나 요사이 쓰이는 언니의 뉘앙스는 이런 원뜻과 다르다. 어머니같은 손님에게 딸뻘인 젊은 미용사가 "언니 언니" 하는 건 버릇없거나 몰상식해 보일 뿐 다정함의 표시로 생각되지 않는다. 게다가 대접해야 하는 손님은 '언니'라고 부르는 것 같지도 않다. 은연중 '하대에 가까운' 호칭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종업원에 대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일반대명사로 통칭하는 건 이름도 성도 모를 때다. 명찰이 있는데도 '언니'라고 부르는 건 친근함의 표시라고 하기 어렵다. 여성부의 홍보책자에 성매매 여성을 '언니'라고 지칭한데 대해 손봉숙 의원이 적절치 않다고 꼬집었다는 소식이다. 호칭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그렇더라도 수월하다는 이유만으로 '언니'라는 호칭을 남발하는 건 부적절해도 한참 부적절하다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