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1번지' 강남이 흔들린다] '벼랑끝 학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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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실업대란 속에서 4년제대학 출신의 최대 취업처가 사설학원인데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정책의 대의명분은 이해하지만 우리들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습니다."
강남 학원 업계가 EBS교육방송,불경기 등의 여파로 된서리를 맞으면서 젊은 학원 강사들은 생계의 위협을 절감하고 있다.
대치동 학원가엔 "오는 11월17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학원들이 줄폐업을 하면서 학원강사 대학살이 필연적"이라는 '강사괴담'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정부의 EBS방송과외는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교육개혁에 서광을 비치게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가뜩이나 불황에 시달려온 사설학원에 치명타를 날린 셈이 됐고,학원 강사들은 대량실업 위기에 놓인 것이다.
사교육비를 줄이는 정책이 청년실업 증가를 초래하는 아이러니를 빚고 있는 셈이다.
교육부의 대학졸업자 취업통계 조사에 따르면 작년 가을과 올 봄의 대졸 취업자 중 9.6%에 달하는 1만2천5백93명이 학원 강사로 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서연학원의 영어강사 A씨(28)는 "1학기 중간고사 때만 해도 3백명에 달하던 학생이 요즈음은 1백50명 선으로 뚝 떨어지자 학원 강사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다"며 "최근에는 한 달도 안 된 강사들이 아무 사전통보를 받지 못하고 해고당하는 일까지 있다"고 한숨지었다.
서초구에서 해오름 과학·수학 학원을 경영하고 있는 B원장(49)도 "강사 수를 최근 6개월간 30% 정도 줄였는데 그래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사 월급도 줄어들고 있다.
그동안 강남 학원 강사의 월급은 학생 수에 상관없이 정액제로 대략 2백만∼3백만원 선.하지만 지금은 소규모 학원에까지 성과급제가 확대됐고 강사들의 수입도 평균 30% 이상 급감했다.
외환위기 이후 일반 기업이나 금융권 취업이 힘든 이른바 '비인기 인문대 출신'들의 최대 취업처가 강남 학원가였지만 이젠 옛말이 되고 있다.
해오름 학원의 B원장은 "기존 강사도 내보낼 판인데 새로운 강사를 어떻게 뽑겠냐"며 "어지간한 실력자가 아니면 강사 자리 구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에서 퇴출된 강사들의 비강남권 이동도 두드러진다.
학원 강사의 '하향이동'이 시작된 셈이다.
지난달까지 대치동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D씨(32)는 최근 관악구 봉천동 보습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수입이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며 "강남 학원 강사의 '하향이동'으로 비강남권 강사들은 갈 곳을 잃고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