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옷 치수

국내에서 양복 착용이 허용된 것은 1895년 단발령 선포와 함께였다. 양복은 1899년 외교관 복장,1900년 문관 예복으로 채택됐고,1903년엔 한국인이 운영하는 양복점도 등장했다. 양장은 1899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윤치호의 부인,이듬해 국내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와 엄비가 입었다고 전한다. 이후 1970년대까지 남녀 모두 정장은 맞춰 입었다. 옷을 맞추자면 양복점이나 양장점에 가서 키와 가슴ㆍ허리ㆍ엉덩이둘레와 팔 다리 길이는 물론 가슴과 엉덩이도 중앙과 위 아래를 구분,스무 가지 가까운 신체치수를 쟀고 반드시 가봉을 거쳤다. 맞춤옷은 따라서 체형이 다소 변해도 무리없이 입을 수 있었다. 맞춤복은 그러나 한번 해입자면 왔다 갔다 번거롭고 간혹 결과를 놓고 시비가 생긴 데다 언제든 즉석에서 골라 입을 수 있는 기성복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확 줄어들었다. 80년대만 해도 맞춰 입는 사람이 꽤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 기성복을 사입는다. 연미복같은 예복도 기성복 중에서 고를 정도다. 문제는 치수.사람마다 체형이 제각각인데 기성복의 치수는 한정되다 보니 딱 맞는 경우가 적다. 허리가 맞으면 엉덩이가 끼고,품이 맞으면 기장이 긴 식이다. 수입품은 더하다. 미국 옷은 품에 비해 어깨가 넓고,이탈리아 옷은 팔이 길다. 아르마니 제품은 소매기장을 줄여주다 못해 "원래 길게 입는 것"이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다. 수선하면 잘 고쳐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수도 많다. 겉만 손질하고 안감 처리를 제대로 안해 안팎이 맞지 않거나 옷맵시가 흐트러지기도 한다. 두세 번씩 수선하느라 오래 걸리면 막상 입을 철을 넘기는 일도 있다. 택배해 준다지만 입어보지 않고 받기 껄끄러워 직접 가다 보면 오가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다. 내년부터 이런 일이 줄어들게 됐다는 소식이다.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이 남녀노소 및 체형에 따라 규격을 세분화한 치수를 내놨다는 것이다. 새 체계대로 만들면 옷 고르기가 한결 수월해질 게 틀림없다. 권고안이라고 무시하거나 찾는 사람이 적다고 몇 가지만 만들지 말고 다양한 사이즈를 고루 내놓기를 기대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