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여당의 말바꾸기

정치인들의 말바꾸기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사정변경론'을 내세워 어려움을 피해가는 특별한 재주를 가진게 정치인들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국민들로부터 '믿지못할 사람'중 맨앞에 오르내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열린우리당은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론이 나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헌재의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부영 의장은 "만약 위헌결정이 내려진다고 하더라도 이를 존중하겠다"고까지 했다. 이런 기류는 몇시간 뒤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리자 1백80도 바뀌었다. 21일 밤 열린 의원총회는 "헌법재판관도 탄핵할 수 있다" "분수를 망각한 오만방자한 결정"등 거친 용어가 총동원된 헌재 성토장이었다. 헌재 결정이 내려진지 하루가 지났지만 '약속'과는 달리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거나 '수용한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여당이 반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신행정수도 건설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했던 사안인데다 국회 통과라는 확실한 법적 근거를 확보하고 있었기에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욱이 아무도 위헌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하지 못한터여서 좌절감이 더 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더라도 유감표명이나 단순한 비판차원을 넘어 마치 헌재와 결전이라도 치를 듯한 여당의 행태는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지금 여당이 성토하는 헌재는 지난 5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기각,여당에 웃음을 찾아줬던 바로 그 헌재다. 더욱이 헌재의 결정은 누구도 뒤집을 수 없는 최종 결정이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집권여당이 일각의 얘기처럼 "헌재를 탄핵하자"는 식으로 헌재의 위상 자체를 부정하려 한다면 나라의 근본이 어떻게 되겠는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수습책을 준비해야 할 때다. 이재창 정치부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