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간 시간들 어디로 갔을까.. 김선옥씨 시집 '모과나무에 손풍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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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7년 '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중견시인 김선옥씨(58)가 신작 시집 '모과나무에 손풍금 소리가 걸렸다'(책만드는집)를 펴냈다.
어느새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겨버린 시인의 눈에는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아련하게 스쳐 지나간다.
'죽어간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째깍이는 초침은 시신이 되어/어느 산 한 모퉁이에 누워 있을까?/시간은 녹아 물이 되고/육신은 죽어 산에 묻히는데/세월의 씨앗은 어디쯤에/한 포기 풀잎을 틔우고 있을까?/바닷바람에 표류하는 진한 소금기/썰물의 나이'('썰물의 나이' 전문)
시인은 또 속도만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 길을 잃은 채 방황하는 도시인들에게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도로는 항상 나를 향해 있지만/나는 그냥 우두커니 서 있다/이정표 화살표는 쏜살같이 가라 하지만/무게 중심을 잃은 채 나는 우두커니 서 있다/어디로 가란 말이냐?'('우두커니 서다' 중)
이런 사람들에게 시인은 주위를 둘러보며 여유를 갖자고 이야기한다.
'여보게 친구/갇힌 구속에서 풀려나/새처럼 날아보세…인간이란 집에 갇히고 땅에 갇히고/야만의 도시,그물 같은 교통에 갇히고/마침내 우리는 사라져야 할 우주에 갇혀 사는 걸세/버려야 하네'('여보게 친구' 중)
이건청 한양대 교수는 "김선옥은 도식과 타성의 현실 속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힘든 응전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이다.
인습이나 타성이라는 쉬운 방법을 배제하고 낯선 미망의 길을 따라가며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그의 시는 그래서 언제나 새롭다"고 평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