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시급한 혁신 서밋

눈여겨봐야 할 행사가 있다. 오는 12월1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미국 국가혁신지도자회의(National Innovation Summit)가 그것이다. 민간이 주도하는 미국경쟁력강화위원회가 만든 국가혁신구상(National Innovation Initiative)이 미국의 새 정부에 혁신 아젠다를 제시하는 자리다. 지난해 10월 발족한 국가혁신구상은 새뮤얼 팔미사노 IBM 회장과 웨인 코프 조지아공대 총장이 공동 의장을 맡아 △혁신기술 △공공부문 혁신 △혁신시장 그룹 등 7개 분과위원회를 운영하며 국가혁신아젠다 도출 작업을 벌여왔다. 이미 중간보고서가 공개돼 세계 각국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미국에서 국가혁신지도자회의가 열리기는 이번이 벌써 세번째다. 지난 98년에는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MIT에서 열렸고 2001년에는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주도해 샌디에이고에서 두번째 회의를 가졌다. 미국 국가혁신지도자회의가 의미있는 것은 '혁신의 주체'인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혁신이 뜻하는 것이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방법론 등을 만들어내는 것임을 생각할 때 기업이 빠진 혁신은 그야말로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혁신이 꼭 그렇다. 혁신 정책 추진 과정에서 민간이 참여하고 있는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 민간 중심의 추진체가 있기는 했다. 90년대 고 최종현 회장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중심이 돼 '국가경쟁력강화민간위원회'를 운영했다. 뒤를 이은 김우중 회장이 이를 민간과 정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특별위원회로 만들려고 했지만 국민의정부에 이어 참여정부까지 미지근한 반응을 보여 지금은 이 민간위원회마저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지금 상태로라면 정부는 정부대로 혁신을 외치고,기업은 기업대로 살 길을 찾는 식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 혁신이 아니라 '정부 혁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경제 사정이 좋은 미국에서나 가능한 얘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독일(연구기술혁신회의) 영국(경쟁력위원회) 일본(산업경쟁력회의) 등 선진국은 물론 싱가포르(국가경쟁력위원회) 등 경쟁국,심지어 불가리아(국가혁신포럼) 같은 나라도 민간이 주도 혹은 참여하는 혁신추진체를 가동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경련회관에 '386 국회의원'들이 찾아가는 이벤트 정도로는 부족하다. 정치권과 민간 사이의 거리가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간극만 확인하는 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서다.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공개적으로 여는 큰 이벤트가 오히려 필요한 시점이다. 뒤늦게 모방하는 기분이어서 그렇지만 국가혁신지도자회의 정도라면 여러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많을 것이다. 민간에서는 이미 제의를 해놓은 상태다. 전경련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고 정부측에서 장관과 관련 기관장들이,민간에서 경제5단체장,업종 단체장,외국인 투자기업대표 등이 참여하는 60여명 규모의 '민관공동 경쟁력강화위원회'를 만들자고 수년 전부터 주장해왔다. 민간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은 각 부처 혁신담당자들이 도달하는 결론을 보면 명확해진다. 열심히 하는 혁신담당자들이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각종 혁신 도구들이다. 가치혁신(VI),6시그마,BSC(균형성과표)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경영도구야말로 이미 기업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름의 적용 노하우를 쌓아놓은 것들이다. 정부와 민간이 경쟁하는 것이 아닐 바엔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민간의 참여가 절실하다. 그것이 국가혁신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