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위협하는 헤지펀드] '머니게임' 몰입…초대형 은행까지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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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계속되고 있는 헤지펀드 붐은 '버블 붕괴'로 이어져 국제금융 시장에 큰 충격을 줄 것이란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국제원자재 시장을 교란시키고 각국의 주식.채권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헤지펀드에 대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 "초단기 고수익 투자를 쫓는 헤지펀드가 급성장하면서 그 폐해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등을 중심으로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 강화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헤지펀드 급성장=금융시장 조사기관인 헤지펀드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90년 이후 헤지펀드는 그 수와 규모 면에서 연평균 20%씩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0년 4천여개에 불과하던 헤지펀드는 올 연말께면 9천여개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 감독당국의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헤지펀드는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위험은 따르지만 높은 수익률을 제공한다는 매력 때문에 연기금이나 대형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들의 자금 유입이 급증하고 있다.
제도권 투자은행들의 '사내(In-house) 헤지펀드' 설립도 가속화되고 있다.
씨티그룹은 최근 헤지펀드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펀드매니저들을 대거 영입,사내에 '트리베카 글로벌 인베스트먼츠(Tribeca Global Investments)'라는 헤지펀드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사내 헤지펀드를 약 1백억∼2백억달러 규모로 확대해 선물·옵션은 물론 주요국 통화 부동산 석유 등에도 적극 투자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지난해 사내 헤지펀드를 설립해 짭짤한 재미를 본 도이체방크는 펀드 자체를 분사시켜 외부자금도 수혈받고 공격적인 투자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골드만삭스의 경우 '펀드 오브 헤지펀드(헤지펀드에 투자하는 펀드)'를 중심으로 소액투자자들마저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다.
◆버블 가능성 우려=플래티넘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크레이그 리브스 대표는 "헤지펀드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그만큼 펀드매니저들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의미"라며 "상당수 헤지펀드들이 올 여름부터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만약 위험자산 투자를 위주로 하는 헤지펀드가 무너지면 제도권 금융시장 전체에도 '도미노식 충격'이 일어날 것이라는 지적은 이 때문이다.
헤지펀드는 제도권 펀드가 상상할 수도 없는 창의적인 투자와 발빠른 행보로 고수익을 낸 뒤 시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들의 투자기법은 과거에 비해 진전된 것이 없고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특정 헤지펀드가 고유한 투자기법으로 돈을 벌면 경쟁업체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비슷한 투자기법으로 자금을 운용,수익률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헤지펀드의 이런 집단적인 행동 양식은 극단적인 위험에 최고 수익을 노리는 '무모한' 투자 행태를 낳을 수 있고,이는 급작스러운 '버블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난 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파산위기에 몰려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규제 강화 논란=헤지펀드를 둘러싼 문제점들이 불거지자 미 증권거래위원회는 올 여름부터 '헤지펀드 매니저 등록제'를 추진하는 등 규제 강화를 적극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등 금융권 일각에서는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펀드라는 고유의 특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규제강화에 반대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헤지펀드 업계가 안고 있는 고위험성과 헤지펀드 투자의 대중화 양상을 감안할 때 제한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며 "금융시장의 효율성과 유동성 확보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헤지펀드의 순기능을 살리는 방향으로 제어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