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美 선거역사의 기록들

[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미국 역사상 1789년의 첫번째 대통령선거는 조지 워싱턴을 대통령으로 뽑았고 1793년 선거는 그를 재선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이 두 선거는 경쟁선거가 아니었다. 각 주들이 선거인단을 뽑기는 했지만 모두 워싱턴을 찍기로 사전에 약속이 돼 있었다. 조지 워싱턴이 한 일이라고는 그냥 수락하는 것 뿐이었다. 이어 존 애덤스,토머스 제퍼슨,제임스 매디슨,제임스 먼로를 당선시킨 대통령선거도 조용하게 끝났다. 그러나 존 퀸시 애덤스가 당선된 1824년은 미국 선거 역사상 전환점으로 기록된다. 그 해 선거를 계기로 미국은 선거인단을 보통선거로 뽑기 시작했다. 1824년 대선 결과 퀸시 애덤스는 앤드루 잭슨(15만3천5백44표)보다 4천표 뒤졌으며,선거인단 투표에서도 99 대 84로 잭슨이 우세했다. 그러나 선거인단의 과반수를 득표하지 못하면 하원이 대통령을 뽑는다는 내용의 12차 개헌에 따라 결정권은 당시 권력자였던 하원 의장 헨리 클레이의 손으로 넘어갔고,그는 부통령에 임명해준다는 약속을 받고 퀸시 애덤스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 잭슨은 이를 '더러운 거래'라고 비난했고 다음 대통령은 국민들이 직접 뽑아야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렇게 해서 1828년 미국은 역사적인 첫 보통선거를 치르게 됐으며,이번에도 잭슨과 퀸시 애덤스가 맞붙게 됐다. 이 때부터 달라진 것 또 한 가지는 선거 캠페인 기간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테네시주는 선거가 실시되기 3년 전인 1825년 봄 이미 잭슨을 대통령후보로 지명했다. 또 폭로와 선거포스터 같은 것들도 이 때부터 등장했다. 퀸시 애덤스의 지지자들은 잭슨이 살인을 18번이나 했다는 주장을 담은 포스터들을 붙이기도 했다. 올해 선거를 미국 역사상 가장 추잡한 선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1828년 상황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1828년에는 퀸시 애덤스가 우세했던 뉴잉글랜드의 경우 학교에서 "아벨을 죽인 사람이 누구지"하고 물으면 학생들은 "잭슨 장군입니다"고 대답할 정도였다. 퀸시 애덤스는 잭슨을 '사람 고기를 암거래하는 자'로,그의 부인을 '간통녀'로 비방했다. 이 소란스러웠던 선거에서 잭슨은 64만7천2백76표 대 50만8천64표로 애덤스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잭슨은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압승했다. 사실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고도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퀸시 애덤스 뿐이 아니다. 1844년 폴크,1848년 테일러,1856년 뷰캐넌,1876년 헤이스,1880년 가필드도 그랬다. 우드로 윌슨은 소수표로도 1912년,1916년 두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슨은 연방소득세를 도입하고 후에 F D 루스벨트가 도입하는 뉴딜정책의 토대가 될 많은 기반을 마련하는 등 미국인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켰다. 퀸시 애덤스 이래 가장 적은 득표율(39.9%)을 가지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에이브러햄 링컨(1860년 선거)이다. 그 해 선거는 결과적으로 남북전쟁을 불러왔기 때문에 의미심장했다. 이후 1960년 대권에 도전한 존 F 케네디의 득표율도 49.8%에 그쳤다. 이번 선거는 각 후보들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 전술을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역시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재치와 유머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정리=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 ◇이 글은 영국 데일리 메일 칼럼니스트이자 '미국인들의 역사(A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Perennial,1999)' 작가인 폴 존슨이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칼럼 '옛날 옛적에(Once Upon a time)'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