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김근태 장관의 엉뚱한 연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자본시장 개방과 고금리 정책만을 요구하며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를 더욱 위기로 몰아갔습니다.한국의 진정한 친구이자 스승은 성장과 복지의 통합적 발전을 이뤄낸 유럽이며 한국은 유럽이 걸었던 길을 따라갈 것입니다."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주한EU상공회의소(EUCCK)의 초청으로 오찬 간담회에 참석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시종일관 미국을 깎아내리며 유럽이 '한국의 진정한 친구'라고 강조했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미국과 IMF는 자본시장 개방의 좋은 점만을 얘기했지 그 위험성은 경고해주지 않았다"며 "그 결과 수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도산했으며 한국 경제는 심각한 양극화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사회의 대결구도가 강화됐다는 설명이다. 참석자들에게 사전 통보된 김 장관의 이날 연설 주제는 '보건복지부 정책의 현재와 미래'.유럽계 제약사 사장들이 대거 참석한 것도 관심 사안인 한국의 보건복지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이날 김 장관이 읽어내린 연설문 제목은 '사회통합을 위한 패러다임의 변화'.김 장관은 유럽 기업인들이 듣고자 했던 정책 방향은 언급조차 않은 채 '참여정부의 사회통합론'만을 강조했다. 유럽 경제인들이 고개를 갸우뚱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참석자들은 김 장관이 미국과 IMF를 깎아내리며 '유럽의 친구들에게 배우겠다'는 말을 강조할 때마다 피식피식 웃기까지 했다. 연설이 끝난 뒤 한 대사관의 상무관은 기자에게 "보건복지부 장관이 왜 외국인들 앞에서 '지난 총선에서 획기적인 정치개혁을 이뤘다'는 등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원래 한국 장관들은 경제인들을 모아놓고 이런 식으로 연설을 하느냐"고 물어왔다. 또 다른 참석자는 "실세 장관이기 때문에 가능한 연설 아니겠느냐"며 비아냥거렸다. 주파수를 영 잘못 맞춘 '실세 장관'의 연설에 취재 기자들의 얼굴까지 뜨거워진 자리였다. 유창재 산업부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