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비정규직법, 일단 시행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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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英凡
정부가 지난 9월 10일 발표한 비정규직 법안의 대부분 내용을 대부분을 유지한 채로 국회에 상정하기로 당정간에 합의됨에 따라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노사정간의 논쟁과 다툼이 점점 더 치열하여지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의 안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비정규직 양산법이고 기간제, 단시간 근로,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금지 규정이 실효성이 없으며 노동계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은 법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파업을 계획하고 있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지난 10월 10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어 연대투쟁을 결의하였다.
경영계도 정부안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휴지기간의 설정, 해고 및 초과근로의 제한, 노동위원회를 통한 차별규제 등의 규정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저해하는 요소임으로 축소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가 기업으로 하여금 비정규직을 쓰도록 하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고용보호를 완화하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근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경영자총협회 등 각 노사단체의 주장은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주장할 만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으나 각 단체들이 이익단체이면서 공익적 책무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심각한 사회갈등의 요소가 되고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있어서 우선 고려하여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비정규직은 중요한 고용형태로 자리 잡았으며 상당수의 비정규직 고용이 불법이라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쟁점인 파견근로의 경우 노동부가 올해 실시한 점검에서 대기업사업장 여러 곳에서 불법파견이 적발되었다.
대기업 사업장에서 조차 불법파견 근로자를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파견근로가 지금보다는 대폭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법과 규제를 통해 시장의 힘을 억제할 수는 없다.
일부 노동계에서 주장하듯이 비정규직의 전원 정규직화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면 불법인 상태로 파견근로를 묵인하기 보다는 법의 틀 안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보호받도록 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법의 역할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남용을 막고 이들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른 쟁점사항의 하나인 기간제근로자의 사용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요인이 될지 아니면 무분별하게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는 것을 억제하는 장치가 될 지는 시장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법의 통과를 우려하여 이미 일부 기업에서는 3년 시한이 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들이 이와 같은 방법으로 법의 적용을 빠져나간다면 기간제 근로자는 양산되고 이들의 처우는 더욱 나빠질 것이다.
그러나 정부안의 의도대로 규정이 지켜진다면 과도한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은 억제될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는 노사정위원회 등을 통하여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다각적인 논의를 하여 왔지만 사회적 합의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처한 현실은 매우 다양하고 이들의 상당수는 열악한 근로조건에 처하여 있는 것을 고려하면 더 이상의 논의와 다툼은 지양하고 이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정부가 이번에 제시한 비정규직 법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첫번째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정부안은 지난 몇 년간의 노사정위원회의 논의사항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일단 법을 시행하여 보고 문제가 있다면 다시 고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고용형태로 자리 잡은 비정규직의 사용에 적절한 규제장치 없이 남용되도록 방치하는 것보다는 바람직하다.
노사 모두 경직적 자세를 지양하고 국회의 논의과정에서 보다 합리적인 비정규직 법이 도출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