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美 대선] 美 국민은 '안보대통령'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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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안보 대통령'을 선택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총사령관을 바꾸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세차례의 TV 토론에서 드러낸 비논리적인 주장과 어눌한 몸짓으로 국민들에게 실망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같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테러 전쟁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부시 대통령에게 재집권의 길을 열어줬다.
경제상황이나 사회보장 및 의료보험 등 국내 이슈면에서 부시 대통령은 절대 수세에 몰렸었다.
일자리 손실은 치명적인 약점이어서 아버지 부시처럼 전쟁에 이기고 재선에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낙태와 동성결혼반대,배아줄기세포 연구 제한은 물론 사회보장제도나 의료보험개혁등 국내 이슈에서도 부시 대통령은 케리 후보에 비해 뚜렷한 우위를 보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대통령'의 이미지로 국토안보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나 불안감을 최대한 활용,승기를 잡았다.
2차대전 중인 1944년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베트남전을 치르던 1972년 닉슨이 승리할 수 있었듯이 부시 대통령도 '전쟁 중에는 집권당이 필승한다'는 징크스를 유지했다.
대선 막판에 알카에다 테러세력의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의 위협적인 육성 녹음테이프가 공개된 것도 하나의 변수였다.
녹음테이프가 부시 대통령에게 특별히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지만 '미국은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줬고 그것이 부시 지지자들의 응집력을 강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의 보수주의 지지자들로부터 흔들림없는 지지를 받았다.
대선전 여론조사 결과 공화당의 투표예정자 중 무려 98%의 지지를 받은 반면 케리 후보는 민주당의 투표 예정자 중 92%의 지지를 받는데 그쳤다.
지지기반을 집중 공략한다는 부시의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이같은 전략은 부시의 정치고문인 칼 로브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2년전 공식 선거전에 돌입할 때부터 보수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는데 전력 투구했다.
케리 후보가 선거 막바지에 자신이야 말로 테러전쟁에서 승리할수 있는 강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유세의 과녁을 가운데로 옮겼지만 부시 진영은 줄곧 오른쪽 공략에 치중했던 것이다.
재선에 성공한 부시는 갈기 갈기 찢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일방외교에 실망한 국제사회를 껴안아야 하는 힘겨운 과제를 안게 됐다.
국내적으로 미국은 볼썽사납게 양분됐다.
'부시 아니면 누구도 괜찮다'(Anybody but Bush) 고 생각하는 케리 지지자들에게 어떤 정책으로 유화 제스처를 취할지가 관건이다.
4천억달러를 넘어선 재정적자를 줄이는 일과 사회분열의 씨앗이 되고 있는 낙태나 동성결혼 반대를 거부하는 세력의 입장을 어느 정도 받아줄지 주목된다.
접전주에서 제기되고 있는 소송이나 사기당했다고 생각하는 케리 지지자들의 불만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할 경우 후유증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적지 않다.
미국이 9·11 테러 이후 표명한 선제공격 방침은 여저히 테러 전쟁의 중심 축 역할을 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이나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이 강경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이 발표한 정강정책의 주제도 '더 안전한 세계' 였다.
안전한 세계를 만들기위한 경찰국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공화당은 이번 선거에서 상하 양원의 다수당 지위까지 유지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정치 환경만으로 보면 행정부와 의회까지 장악해 보수주의 기조와 일방주의 외교가 앞으로 4년간 더 강화될 여건을 갖췄다.
하지만 캠페인 기간에서 나타난 것처럼 국민의 절반이 부시에게 등을 돌린 상태여서 오른쪽으로 더 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부시 대통령의 집권 2기는 테러 전쟁을 지휘하는 안보 대통령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반대 세력을 껴안는 사회화합 정책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하겠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