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또다른 얼굴… 경제범죄가 는다] 부동산 사기의 다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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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대구에서는 세입자가 집주인을 가장해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계약금을 챙겨 달아나는 사기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집주인 운전면허증을 위조한 사기범의 감쪽같은 연기에 속아 2천5백만원을 날렸다. 얼마전에는 법적권리가 없는 재건축 조합원 권리증 2백여장을 3천만~9천만원씩에 팔아치운 사기단 일당이 경찰에 잡혔다. 부동산 사기는 피해 규모가 크고 피해자들이 회복불능한 경제적인 타격을 입기 때문에 불황기의 민생경제를 가장 위협하는 '암적존재'로 지목되고 있다.
법무법인 산하의 강은현 실장은 "부동산 사기가 빈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실수요자들이 소유관계와 상대방의 신분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거래를 하는 전근대적인 '계약관행'에 있다"고 진단한다. 여기에 불황기일수록 대박을 기대하는 한탕심리가 만연하고 이 틈을 타고 사기꾼들이 설친다는 것.
◆'위조의 달인'
거래나 등기이전 등에 필요한 인적사항,등기부등본,인감증명서,통장 등이 위조될 경우 실소유자가 확인해주기 전까지는 판별하기 어려운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지난 5월 경기도 시흥등기소에는 공시지가 17억원짜리 땅이 매매됐다며 소유권이전등기 신청서가 접수됐다. 그러나 첨부된 인감증명서의 발급관서 등이 의심스러워 소유자에게 문의한 결과 매매사실이 없었다.
◆'배우 뺨치네'
실제로 지난해 초 서울에서는 범행대상 아파트에 미리 월세로 들어간 뒤 월세계약 체결당시 파악한 집주인의 신상정보를 토대로 새 세입자와 계약을 체결해 전세금을 챙겨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집주인은 '장기출장'이라며 몇달치 월세를 건넨 세입자의 능청에 속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동안 범인은 주민증을 위조하고,통장까지 만들어 대금이체를 받았다.
◆'정보속에 감춘 칼날'
알려진 호재나 '자신들만이 아는 은밀한 재료'를 들먹이며 투자를 권유하는 것도 '고전적' 사기 방식이다. 지난해 11월 초 충남 태안군에서 발생한 폐염전 사기사건이 좋은 예다. 이들은 쓸모없는 염전 17만1천9백평을 평당 4만6천원에 매입한 뒤 투자자 50여명에게 '택지로 개발될 것'이라고 속여 평당 25만원씩 6배에 되팔아 40억2천만원을 가로챘다.
◆'경매도 경계령'
경매시장에서 다세대·연립주택의 소액보증금 우선변제를 노린 신종 부동산 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기 부천에 사는 김모씨(41)는 지난 2001년 융자 5천만원을 끼고 21평형 빌라를 구입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실직한 이후 은행으로부터 경매처분 위협을 받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빌라매입 브로커들을 찾았다.
브로커들은 "6백만원을 줄테니 경매로 넘겨버리자"고 권유한 뒤 소액임차인을 위장전입시켜 놓고 경매에 넣어 3천5백만원에 낙찰받았다. 법적으로 보장된 소액임차인 몫 1천2백만원을 가로채기 위해서다. 김씨는 결국 집을 날리고 나머지 빚 2천7백만원을 여전히 떠안게 됐다. 강 실장은 "최근 다세대·연립주택의 시세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융자금 변제 능력이 없는 주택소유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관우·강동균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