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하이닉스 제소 의미와 전망] 韓 · 日 특허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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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패널)모듈 기술로 촉발된 한.일 특허분쟁이 디지털 시대의 총아로 각광받고 있는 플래시메모리로까지 확산됐다.
플래시메모리는 전원이 꺼지더라도 저장된 정보가 사라지지 않게하는 기억장치(반도체).정보의 입출력이 자유로워 디지털TV 디지털캠코더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PDA(개인휴대용 단말기) MP3플레이어 등에 수요가 확산되고 있는 제품이다.
도시바가 이제 막 플래시메모리 시장에 진입한 하이닉스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은 하이닉스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이닉스는 올해 2조원 상당의 영업이익을 올릴 정도로 탄탄한 수익기반을 갖추고 있고 내년에는 중국공장 건설을 통해 현재 전체 매출액의 8%에 불과한 플래시메모리 생산비중을 20% 이상으로 늘린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낸드 플래시메모리 분야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를 달리고 있는 도시바로선 하이닉스가 신흥강자로 떠올라 선두권을 추격할 가능성에 부담을 느꼈을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플래시메모리 시장판도 변화
플래시메모리는 일본 전자업체들이 액정표시장치(LCD)와 함께 유난히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품목이다.
지난 2001년까지만 해도 세계 시장의 40% 이상을 석권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일본 반도체 업계는 2002년 본격적인 양산을 개시한 삼성전자에 순식간에 추월당했다.
삼성전자는 디지털 기기의 융·복합화 시대가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질 것으로 보고 기존 D램 라인을 속속 플래시메모리 생산라인으로 전환,2002년에 인텔(23.7%)에 이어 세계 랭킹 2위(13.3%)로 치솟았다.
삼성의 추월에 자극을 받은 일본 업계는 관련 사업의 합병을 통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후지쓰와 AMD가 양사의 플래시메모리 사업부 합병으로 '스팬션'이라는 이름의 신설법인을 출범시켰고 히타치와 미쓰비시는 '르네사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일단 탄력이 붙은 삼성전자의 플래시메모리 사업은 지난해 세계 1위 인텔마저 제치며 일본 업계와의 격차를 더욱 벌려놓았다.
올 들어서도 삼성의 독주는 계속돼 세계시장 점유율 25%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스팬션과 르네사스는 합병 전의 시장점유율을 되찾는데 실패하며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일본 업체로는 유일하게 도시바가 지난 2001년 이후 3년 연속 성장세를 유지하며 삼성과 인텔을 맹추격하고 있는 양상이다.
◆왜 하이닉스가 타깃인가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2월부터 낸드 플래시메모리 양산에 나선 하이닉스의 존재는 일본업체의 시장 방어에 큰 위협요인으로 등장했다.
하이닉스가 공정기술 분야에서 일본업체들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데다 최근 유럽 최대의 반도체 회사인 ST마이크로와의 제휴를 통해 중국에서도 플래시메모리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올해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 하이닉스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5% 미만,전체 플래시메모리 시장에선 2% 언저리에 머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하이닉스가 내년부터 생산효율이 높은 3백mm 라인에서 플래시메모리를 생산하고 오는 2006년부터 중국공장을 통해 대대적인 양산에 나설 경우 문제가 달라진다.
더욱이 하이닉스는 최근 눈부신 실적개선과 함께 재무구조 안정으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여건까지 갖추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특허침해 여부의 진실과 관계없이 도시바로선 하이닉스의 발목을 잡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 일본 업체들이 연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