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라파트 사망 이후 중동질서

홍성민 팔레스타인의 독립 투쟁을 40년 이상 이끌어온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11월11일 신병 치료차 머무르던 프랑스 페르시 군 병원에서 75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나는 항상 올리브 나뭇가지와 총을 갖고 다닌다. 내 손에서 올리브 가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포효하던 그가 올리브 가지와 총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아라파트의 사망은 단순히 한 팔레스타인 지도자의 죽음이라는 차원을 넘어 이제 중동평화를 포함한 새로운 중동질서의 재편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아라파트는 1929년 카이로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고,1948년 이스라엘에 대한 투쟁단체 알-파타(Al-Fatah)를 창설하면서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의 기나긴 인생역정을 시작했다. 1964년 5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아랍연맹의 지원으로 아랍정상회담에서 결성되었고,아라파트는 69년 PLO 의장으로 부상하면서 무력투쟁과 평화협상을 병행하는 인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튀니지를 전전하며 어려운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는 88년 12월 이스라엘과 공존원칙을 수용하고,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자치협정에 조인함으로써 화려하게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했다. 그후 1996년 1월 팔레스타인 첫 선거에서 자치수반으로 선출됐고,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3년 6월 부시 미 대통령과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아라파트를 배제한 채 2005년까지 독립국가 창설을 골자로 하는 '중동평화 로드맵'을 추진하면서 이스라엘은 물론 부시 행정부의 평화로드맵은 난관에 부닥치게 됐다. 이스라엘에 의해 연금상태에 놓여 있던 아라파트가 사망함으로써 이제 중동은 새로운 질서재편의 계기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 됐다. 팔레스타인인(人)들은 새로운 지도자의 출현을 기다려야 하고,온 세계는 그 지도자의 행보에 이목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국민들은 그들의 근본문제,즉 '독립국가 창설'이 지상의 과제이기에 새로 출현하는 지도자가 온건파이건 강경파이건 간에 관계없이 이스라엘에 대한 협상과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팔 문제는 단순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걸프전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돼 온 중동질서 재편은 결국 중동평화의 정착이 이뤄져야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중동평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 2백만명과 이스라엘인 20만명이 거주하는 요르단강 서안의 상당 부분을 포기할 용의가 있는지 여부와 아라파트의 후계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막고 아라파트가 하지 않은 타협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부시 대통령은 2년 전 테러리즘에 오염되지 않은 새로운 팔레스타인 지도부를 원한다면서 아라파트와 관계를 끊었으나 결국 미국과 이스라엘은 협상상대가 없어 중동평화의 정착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어쨌든 부시 대통령은 오는 2005년 공식적인 팔레스타인 국가 출범을 골자로 하는,지난 2003년 마련된 중동지역 평화 로드맵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미국의 평화 로드맵은 아라파트 생존기간 팔레스타인과 아랍 국가들의 반발에 부딪쳐 실질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중동평화 로드맵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유혈충돌을 종식시키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창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13년까지 광범위한 정치·경제개혁을 추진하는 역내 국가들에 대해 미국의 무역장벽을 철폐하겠다는 미·중동 자유무역지대 창설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물론 이 구상에 걸림돌이 돼온 것은 아라파트였다. 따라서 아라파트가 없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제 남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협상 대상자에 대해 새로운 정책대안을 가지고 협상에 임할 것이다. 여기에 9·11 테러사태 이후 숨가쁘게 전개돼 온 '테러와의 전쟁'의 핵심인 이라크 사태는 중동평화질서 구축에 핵심 추(錘)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