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뉴딜은 아니올시다

'한국형 뉴딜'이라는 작명을 이 정부는 공식적으로 폐기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10조원짜리 사업에 '종합투자계획'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도 낯간지러울 테고….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아서 기자도 딱한 생각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마치 요리에 서투른 사람이 온갖 식재료를 다 사다놓고 라면을 끓여먹자는 격이요,호텔 뷔페에 가서 비싼 돈내고 김밥만 한 접시 가득 담아오는 모양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부 못하는 학생이 새연필 타령하는 것과도 비슷하고…. 정부가 진정으로 경제를 살리고 서민 살림을 부추기며 미래성장을 위해 SOC(사회간접자본)투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중단돼 있는 천성산 터널부터 다시 뚫을 일이요,원자력 폐기물처리장 부지부터 신속히 선정할 일이며,막바지에 와 있는 새만금 공사를 전면 재개하는 일부터 서두르는 것이 마땅하다. 이런 주제들을 빼놓고 그 무슨 SOC투자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지방공항 같은 곳은 이미 과잉투자 후유증으로 텅텅 비어가는 중이고 민자 고속도로와 터널들은 정부가 적자를 메워주느라 끝도 없이 돈을 쏟아붓는 터에 한 사람이 단식하면 공사중단이고 두 사람이 어깨띠 두르면 원점 재검토를 남발하면서 새삼 SOC투자를 강조하는 정부는 어느 나라 정부인가. 참여정부가 행여 이들 사업에 반대하는 환경론자들의 주장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면 이번에는 10조원이 아니라 무려 2백조원의 SOC가 걸려 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이라도 서두르는 것이 옳다. 인천과 부산과 광양의 수백조원 SOC사업은 지금 도대체 어떤 형국이 돼 있는지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설명이라도 듣고 싶다. 이것은 10조원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백조원 단위의 문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부산과 광양은 외국인 투자실적이 거의 제로이며 인천 또한 23조원이나 투자약속을 받아놓고도 실제 집행된 사례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 학교도 세우지 못하고 외국인 병원조차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정부의 진면목이다. 그러니 2백조원의 인천경제자유구역 SOC사업이 마냥 시간만 죽이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사업을 접어둔 채 자금 출처도 오리무중이며,쓸 곳조차 정해진 것이 없는 뉴딜이니 종합투자계획이니 하는 그럴싸한 슬로건부터 불쑥 던져놓는 발상이 대단하다. 장작을 쌓아놓고도 불 땔 생각은 않고 이불을 탓하자는 것인가. 결국 이런저런 논란과 반대를 모두 피하려다 보니 남는 것은 사학연금을 끌어다 대학기숙사 짓고 국민연금 돈을 헐어 노인복지시설 짓는 일 밖에 없다. 무엇이 잘못되었냐고? 한참 잘못되었다. 국민연금은 2035년이면 고갈의 길을 달려갈 전망이고 더구나 올해 3천7백억원인 복지투자 잔액을 내년에는 3천1백억원대로 더 줄인다는 것이 국민연금의 내부 계획이다. 당초부터 함부로 갖다 쓸 돈도 아니었다. 더구나 2004년 상반기 기준으로 연 수익률이 3%대에 불과한 복지투자를 강제한다면 이는 연금에 배임의 죄를 짓게 하는 일이며 반대로 정부가 국민연금의 평균 수익률인 5%대를 맞춰준다면 그 때는 정부가 납세자들에게 배임하는 일이 된다. 왜…? 연 5% 수익률을 보장하는 것보다는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 1%포인트 이상 싸게 먹히므로. 뉴딜을 운운하기 전에 경제가 왜 이다지도 지리멸렬한지,과연 누가 SOC투자를 죽이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길 진심으로 권할 뿐일진대…. 정규재 편집부국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