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고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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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고려장(高麗葬)이라고 하면 늙고 병들어 거동을 못하는 부모를 멀리 내다 버린 악습으로 생각한다.
고려시대에 성행한 장례풍습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지방마다 고려장에 얽힌 설화들이 구전되고 그 흔적으로 여러 봉분들이 기정사실처럼 지목되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과연 고려장은 존재했는가.
우리 고대사를 기술한 어느 문헌에도 산 사람을 매장하는 내용은 결코 없다고 한다.
부여와 고구려시대의 후장(厚葬) 풍속이 와전된 듯하다.
다만 고려 때까지 병자를 산속 깊이 내다 버렸다는 기록은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병자란 전염병환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불효죄를 반역죄와 같이 엄하게 다스렸던 당시의 사회풍속으로 미루어 볼 때 생매장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게 학자들의 중론이다.
'고려장'이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쓰였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갈려 있다.
하나는 역사학자 이병도가 1939년에 쓴 '국사대관'에서 고려장을 언급하면서 이후 국정교과서 등에서 별다른 의심없이 사실(史實)로 기술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일제가 우리 문화재를 약탈하면서 악의적으로 만들어 낸 용어라는 설명이다.
무덤의 부장품까지를 노린 일본인들은 조선 인부들이 무덤도굴을 극도로 꺼리자 이를 회유하기 위한 구실로 패륜적인 고려장을 들먹였다는 것이다.
최근 가족해체와 경제불황 등으로 인해 복지시설이나 병원에 버려지는 노인들이 많아지자 이를 '현대판 고려장'으로 묘사하며 땅에 떨어진 인륜을 질타하는 일이 늘고 있다.
부모봉양을 도외시하고 심지어 방기하는 처사는 백번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역사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고려장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충효를 으뜸으로 삼고 그 실천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경제난이 원죄가 되어 부모 자식간의 천륜이 무너지는 세태를 고려장에 빗대면서, 에스키모인들의 풍장(風葬)이나 중국의 유목민, 그리고 고대 인도에서 행해졌던 기로장(棄老葬)과 동일시하는 것은 분명 시정해야 할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