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7일자) 연기금 정부 맘대로 쓸 돈 아니다

연기금 활용 문제가 논란을 빚고 있다. 연기금을 동원해 한국판 뉴딜정책을 펴겠다고 했다 호된 비판을 받은 정부가 이번엔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연기금을 사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혀 관심을 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남미 방문중 현지 교민과의 간담회에서 "KT 포스코 국민은행 같이 국민기업으로 애정을 갖고 있는 이런 자본은 우리가 갖고 있는게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언급한데 이어 이헌재 부총리는 15일 국회에서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비,국내 기업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연기금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답변,이를 뒷받침했다. 국내 굴지 기업들의 경영권을 외국자본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이 대단히 시급한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재계 3위그룹인 SK가 유럽계 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의 경영권 위협에 끝없이 시달리고 있는데다 다른 상장기업들에서도 우선주 매입소각 요구 등의 경영권 간섭이 잇따르고 있는 점만 보더라도 그렇다. 하지만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연기금을 동원하겠다는 발상은 설득력도 없을 뿐 아니라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연기금은 국민들이 노후생활 등의 특수 목적을 위해 차곡차곡 쌓아온 자금이다. 정부가 마음내키는대로 아무 곳에나 사용해도 괜찮은 쌈짓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더구나 주식시장은 리스크가 대단히 큰 시장이어서 투자를 한다고 해도 수익을 올린다는 보장이 없다. 만에 하나 큰 폭의 손실을 입을 경우 국민들의 노후생활 보장이 불가능해지는 등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물론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허용하는 것 자체는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법에서 원천적으로 봉쇄해 놓은 것이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정부가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또는 특정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마음대로 연기금을 동원해 주식을 사도 괜찮다는 얘기는 아니다.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연기금 자체 판단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자산운용을 해야 한다. 때문에 국내기업,설령 그것이 국민기업이라 하더라도 연기금을 동원해 경영권을 방어하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한심하다. 그보다는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부터 해소시켜 주는 것이 순서다. 외국의 투기자본은 마음대로 설쳐대도록 내버려 두면서도 국내자본에 대해서는 출자총액제한이다,은행주식 소유제한이다,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이다 하면서 온갖 굴레를 씌워 놓고 있으니 경영권 방어가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부터 하루빨리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