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CEO 김응용

어느새부턴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신비한' 자리가 됐다. 적게는 수억원,많게는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는 능력 있는 사람,새벽부터 움직이고 세계를 뛰어도 지치지 않는 체력의 소유자,열정에 불타올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모험가. 아주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소수의 사례가 전체의 특징인 양 이렇게 과장되면서 우리의 CEO관은 상당히 왜곡돼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 9일 삼성라이온스 사장이 된 김응용 전 삼성라이온스 감독이 CEO가 되자마자 "밤잠을 못 이루겠다" "사회 초년병이 된 기분이다" "감독보다 어려운 직업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등의 말을 했다는 사실은 이런 사회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단적인 예다. 김 사장은 그러나 주눅들 필요가 없다. 여러가지 면에서 CEO로서 유리한 자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성에서도 수년간 화두가 된 '인재 경영'에 관한 한 김 사장은 이미 전문가다. 감독 생활 22년 동안 숱한 스타와 국가대표를 직접 뽑아 기른 그다. 또 경영의 중요이슈 가운데 하나인 구성원들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데도 김 사장은 오랜 경험이 있다. 선수들이 어떤 때 최선을 다하는지,또 어떻게 하면 사기가 떨어지는지를 그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봐왔다. 오히려 김 사장은 그동안 '그들만의 리그'로 통했던 대기업 CEO 시장의 벽을 깨는 새로운 돌파구의 의미를 갖는다고 보고 싶다. 한때 '히딩크를 대통령으로'라는 구호까지 나올 정도로 나라 전체에 리더십 부재상황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삼성 내부적으로도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 이건희 그룹회장이 지난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내세운 그룹의 3대 스포츠 가운데 하나가 전문가가 키를 잡는 전문가 집단으로 공식 출발했다는 점에서다. 이 회장은 당시 과학과 기록의 경기인 야구,리더십과 팀워크의 게임인 럭비,윤리와 자율의 스포츠인 골프를 그룹의 3대스포츠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CEO 김응용의 삼성라이온스가 그 성과에 따라서 삼성 리더십 모델의 새로운 전형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김 감독이 CEO로서 성공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이 '고객 지향적 마인드'를 갖는 일이다. 물론 스포츠팀답게 목표는 항상 우승이어야 하지만 이제는 그 과정이 더욱 중요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감독은 무게중심을 경쟁에 둔다. 경쟁자를 무찌르면 목표는 완수된다. 그러나 CEO는 고객,즉 관객을 상대해야 한다.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이기고 지는 것 못지 않게 재미있는 경기요,수준 높은 게임이며,만족스러운 이벤트일 수도 있다. 리더십 스타일도 새로운 방식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제까지 한국 야구를 상징하는 카리스마로서 '선수'들을 상대했다면 이제는 전문경영인으로서 전문관리자들,즉 감독 투수코치 주루코치 타격코치 등 기업으로 치면 사업부서장들을 관리해야 한다. 카리스마적 리더십 보다는 이들 사업부서장이 스스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서번트(servant:하인)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회사의 비전을 명확히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감독이 한해 우승을 목표로 한다면 사장은 역사에 남는,한국을 대표하는 명문구단을 비전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제들은 야구를 잘 아는 김 사장이 하기에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CEO 김응용은 반드시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우물을 파면 CEO가 될 수 있는 시대,시장과 대중 속에서 경험을 쌓은 현장 경영자가 중용되는 시대,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한 사람이 인정받는 시대가 열렸으면 한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