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계법인 '시련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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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각종 기업 스캔들을 겪으면서 미 회계법인들이 점점 엄격해지는 규정과 소송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고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18일자)가 보도했다.
이 잡지는 결국 이 같은 상황에선 관련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대형 회계법인만 살아남을 수 있어 회계법인들의 집중화 현상을 더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엄격한 규정·소송 '이중고'=지난 2001년 미국 에너지기업 엔론의 회계부정 사건으로 당시 5대 회계법인 중 하나였던 아더 앤더슨이 무너진 이후에도 각종 회계부정사건이 끊임없이 터지면서 회계법인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이탈리아 최대 유가공 업체 파말라트 스캔들로 업계 1위(2003년 수임료 기준)인 딜로이트앤드투시와 7위 그랜트손톤이 타격을 입었다. 또 가장 최근에는 미국 최대의 모기지(주택저당) 금융서비스 회사 패니메(Fannie MAe)와 통신 장비 업체 노텔 네트웍스 등의 회계부정 혐의가 드러났다.
잇단 회계부정 사건으로 투자자들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업계의 자율규제 대신 정부의 감시와 통제가 강화됐다.
새로운 정부 감독기구로 기업회계감독위원회(PACOB)가 출범했고 사베인·옥슬리법안에 따라 회계감사와 비감사 업무의 겸업 금지 등 각종 새로운 규제가 생겨났다.
급증하는 법률소송도 회계법인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딜로이트앤드투시,PWC,언스트앤드영,KPMG 등 소위 '빅4' 회계법인을 상대로 걸려있는 소송금액은 5백억달러에 이른다.
이들 회계법인은 통상 회계감사로 거둔 수입의 10∼20%를 합의금 등 소송 관련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계법인의 배상보험 가입도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주요 회계법인에 배상보험을 제공하는 보험회사들이 10년 전에는 1백50곳에 달했지만 현재는 10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업계 집중화 현상 심화 우려=일각에서는 늘어나는 법률비용 부담이 회계법인들의 집중화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법률비용 부담을 견뎌낼 수 있는 대형 법인만이 큰 기업체들과 계약을 맺을 엄두를 낼 수 있다는 논리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에 따르면 현재 딜로이트앤드투시 등 '빅4'가 미국 상장기업의 97%,일본 상장기업의 80%,영국 1백대기업 전부를 회계감사하고 있다.
회계법인이 대형화될수록 수임료 때문에 고객 회사에 휘둘릴 가능성이 적어지고,필요한 전문가를 보다 많이 양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경쟁이 줄어들면서 회계감사의 질이 떨어지고 향후 '빅4' 중 어느 한곳에서 심각한 문제가 적발되더라도 원칙적인 처벌이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듀크대학의 짐 콕스 교수는 "4대 회계법인이 망하기에는 너무 커버렸기 때문에 심각한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우려된다"며 "회계법인 교체를 의무화하거나 비회계감사 업무에 대한 제한을 강화해 규모가 작은 회계법인들도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