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휴대전화 커닝

시험 때가 되면 많은 학생들이 커닝(cunning)에 대한 유혹을 느낀다고 한다. 커닝이 부정행위인데도 그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커닝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관대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른 집단과 특별히 구분되는 배움터에서 다른 의도가 아닌 오직 '향학열'에서 비롯된다는 일반인의 그릇된 '너그러움'이 깔려있는 것이다. 사실 커닝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해묵은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공부한 것 이상의 성과를 올리기 위한 학생들의 비뚤어진 욕구에다,성적으로 줄을 세워 지나친 경쟁을 유발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 커닝으로 표출된다는 설명이 그럴 듯하다. 이러한 탓에 커닝수법도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올해 수능시험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적발되면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발칵 뒤집혔다. 그것도 한 두명이 아닌 무려 90여명이 여관 등을 빌려 예행연습을 해가며 조직적으로 시험부정을 저질렀다니 그 통 큰 배짱이 놀랍기만 하다. 첨단 통신장비를 이용한 부정이 있을 것이라는 '설'은 이미 인터넷 등에 공공연히 나돌곤 했는데 이번 사건으로 그 설이 증명된 셈이다. 페이퍼(쪽지)를 만들고 손바닥이나 책상 그리고 교실벽 위에 깨알 같이 글씨를 적어 놓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시험부정행위는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에서도 극성이라고 한다. 얼마 전 한 유명대학의 설문조사를 보면 40%의 학생이 커닝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오죽했으면 교수가 시험지 위에 '부정행위는 우리의 지성을 멍들게 합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놓았을까. 어느 신학대학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절대 커닝을 않겠다"는 서명을 받는가 하면 양심볼펜을 돌리기도 했다. 선진국에서는 논문베끼기와 함께 커닝(원래의 영어는 '속인다'는 뜻의 cheating임)을 범죄와 동일시할 정도로 엄격하게 다루고 있다. 장래 사회의 일원이 될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정직'과 '준법'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커닝이 만연되고 있는 풍토는 이러한 덕목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암울한 심정을 떨칠 수 없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