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생] (인터뷰) 이종철 삼성서울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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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까지 만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병원은 몸의 병을 치료하는 대신 마음의 병을 얻어가는 곳이었다.
3분을 진료받기 위해서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9시에 진료약속을 하면 10시쯤에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진료를 조금이라도 일찍받기 위해 의료진에게 촌지를 건네는 것이 관행이었다.
의사들의 웃는 얼굴을 보면 환자들이 감지덕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1994년 삼성서울병원이 들어서면서 이런 병원문화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10년간 '환자중심의 병원문화'라는 모토를 내걸고 국민들에게 '병원도 친절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대기시간이 가장 짧은 병원' '촌지 없는 병원' '전문 간호인력이 입원환자에게 모든 간호를 함으로써 보호자가 상주할 필요가 없는 병원'….삼성서울병원이 한국의 병원역사에 남긴 기록들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삼성서울병원이 받은 갖가지 수상실적이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1998년부터 국가고객만족도조사(NCSI)에서 7년 연속 병원 서비스 부문 1위를 차지한 것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다.
삼성이 내건 '친절한 병원'은 벤치마킹의 대상을 넘어 이제 국내 의료계의 대세로 뿌리내리고 있다.
이 같은 개혁을 이루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종철 삼성서울병원 원장(56)이다.
이 원장의 '인본주의 의료철학'은 한국의 병원문화를 바꾸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창립 10주년을 맞은 삼성서울병원의 원장실에서 이종철 원장을 만나봤다.
"의술은 곧 인술입니다.인술에는 사랑이 담겨야 합니다.환자를 사랑으로 대할 때만이 병원은 그 존재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종철 원장은 국내의 대표적인 병원 전문 최고경영자(CEO)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원래는 의학 연구에 몰두해온 전형적인 의학자였다.
이 원장은 어머니가 앓아온 위장병에 관심을 가진 것이 계기가 돼 서울대 의대에서 소화기 내과를 전공하게 됐다.
그는 위암 연구로 서울대 의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한양대 의대 조교수를 거쳐 86년부터 미국 로체스터대학 아이작고든 소화기센터에서 연구원으로 몸담았다.
이 곳에서 이 원장은 전기전도와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첨단 위질환 검사방법을 접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원장은 88년 귀국해 한양대 의대에서 부교수로 일하면서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위장 운동검사 및 위장 전기전도검사와 관련한 연구에 힘을 쏟았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주입된 닭의 간을 환자에게 먹여 위장운동을 검사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5년간 1천명의 환자에게 무려 1천5백여 마리의 닭을 먹여 실험하는 고된 작업을 거쳐 위운동장애 환자 1백70여명을 진단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외국의 첨단시설에 비해 국내 시설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94년 첨단의학연구를 모토로 내건 삼성서울병원이 문을 열었다.
이 원장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우리나라는 소화기질환 환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연구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요.의학자로서 좋은 연구시설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원장은 소화기 내과 과장으로 삼성서울병원과 인연을 맺은 후 소화기질환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나 의학자로서의 길을 걷던 이 원장의 미래를 바꾸게 만든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형제 중 다섯째였던 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다.
당시 사고를 당한 동생은 급히 서울 모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당시 당직을 서던 전공의 1년차는 수혈만 하면서 다음 날 교수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교수에게 급히 연락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밤이라 감히 교수를 불러내지 못했던 것이다.
수술은 오전 7시가 돼서야 시작됐고 동생은 결국 출혈과다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원장은 96년 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마자 응급실 개혁에 착수했다.
전공의 1년차들이 맡고 있던 응급실 주치의를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전공의 2년차들에게 맡겼다.
이를 실현하는 데만도 무려 1년이 걸렸다.
"변화를 싫어하는 대표적인 직업이 의사와 교수입니다.그런데 의과대학 교수는 이 2가지에 모두 해당됩니다.반발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원장은 기획부원장으로 옮기면서 응급실뿐만 아니라 병원 전체로 개혁의 메스를 들이댔다.
환자가 종합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 내과,외과,방사선과 등을 돌아다니던 불편을 없애기 위해 암센터,심장혈관센터 등 선진형 협진시스템을 도입했다.
환자가 내과,외과,방사선과 등을 일일히 돌아다니면서 진료를 받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비인후과,안과,정신과 등 협진이 불가능한 분야는 별관으로 옮겼다.
97년부터는 전국 주요 병원과 협력관계를 맺어 의료기관간 분업체계를 구축했다.
중요한 치료는 삼성서울병원이 맡고 입원을 통한 회복은 협력병원이 맡는 역할 분담체제를 가동했다.
또 협력병원이 보내온 환자들은 당일 진료를 받게 함으로써 급한 환자들이 우선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친절,서비스강화,주인의식 고취'라는 운동을 통해 환자들을 고객으로 대하도록 했다.
"직원들도 저의 길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잘 따라주었어요.혼자의 리더십이 아닌 병원 직원 모두가 일구어낸 결과였습니다."
이 원장은 2000년 병원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삼성서울병원 제2의 도약을 준비해 왔다.
2010년까지 아시아 최고 병원으로 거듭나겠다는 내용의 '비전2010'을 선포했다.
7백병상 규모 아시아 최대 암센터인 삼성암센터를 2007년에 개원키로 하고 최근 공사에 들어갔다.
또 미국 MD앤더슨,중국 리치병원 등 세계 6개병원과 협력체제를 구축해 세계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처방전산화시스템(OCS),의학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등을 도입해 병원디지털화에도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 일류로 올라섰는데 병원이라고 해서 안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21세기는 생명공학의 시대이고 생명공학의 중심에는 병원이 있습니다."
이 원장은 "삼성서울병원이 병원의 중심에 서도록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