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돈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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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秉柱
곧 첫눈이 내릴 듯싶은 날씨다.
눈이 내리면 시골 강아지가 좋아 날 뛰고 골목 안 아이들은 눈싸움을 즐긴다.
요즘 세계금융가의 신사들은 미국 달러를 내던지는 놀이에 사뭇 열중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그런 달러를 받아 사재기를 정책기조로 삼는다.
며칠 전 서울에서는 답답한 소리가 들렸다.
중앙은행 발권력을 동원하겠다는 말이다.
경제문제를 논의하다가 '애국심'이나 '국가안보'에 호소하는 측은 논리 부족을 자인하는 쪽이다.
굳이 액튼 경(1834∼1902)을 인용할 것도 없이 "애국심은 무뢰한의 최후 피난처"이다. 농산물 영화 등 시장개방 토론장에서 자주 되풀이되는 변명이다.
그리고 금융시장문제를 다루다가 머리가 막히면 마지막 나오는 소리가 '발권력 동원'이다. 본인은 비장한 각오로 누구에겐가 충성심을 보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겠지만, 시장의 반응은 뜨악하다.
최근 인터넷 소식에 따르면 모건 스탠리 어느 분석가는 농담겸 진담겸 "만일 일본은행이 통화시장에 개입한다면 그들을 익사시킬 만큼 돈을 내던지겠다"고 했다.
1992년 과대평가된 영국 파운드를 겨냥한 조지 소로스의 투기 공세앞에 잉글랜드은행도 속절없이 손들고 말았다.
하물며 한국은행이겠는가?
문제의 뿌리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에 있다.
대외적으로 GDP의 5%에 해당하는 경상수지적자가 대내적으로는 재정수지 적자와 턱없이 낮은 민간저축과 대칭을 이룬다.
미국 달러 발행액의 약 절반인 3조4천억달러가 해외에 나와 있고, 그 중 약 2조2천억달러가 일본 중국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에 집중 축적돼 있다.
다시 이 돈은 미국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어 국공채 등 달러 자산을 사주기 때문에 뉴욕증시가 뜬다.
미국 국민이 부자된 기분에 소비지출을 늘리니까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출을 늘려 달러 쌓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국제교역과 자본흐름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에 대한 의구심이 싹터 자라면서 미국 조야에서는 달러약세론,교역상대국의 환율조작 혐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일본은 소리없이 미국 속을 알아서 기는 입장이고,중국은 양면작전을 편다.
산티아고에서 부시 대통령을 만난 후진타오 총리는 환율의 신축적 운용을 약속하는 사이에,베이징에서 중앙은행 고위간부는 미국에 쓴소리를 했다.
외국에 환율조정을 요구하기 전에 미국 스스로 재정적자 축소 등 집안단속부터 하라는 얘기다.한국도 덩달아 튀고 싶겠지만 일본을 닮아야 실리가 있을 법하다.
가뜩이나 내수불황인데 환율내림으로 수출경기마저 꺾일까 안절부절하는 관료들의 초조한 모습이 안쓰럽다. 그간 정부가 환율방어용으로 사용했던 실탄이 소진됐다.
올해 외환시장 안정용 국고채 발행한도(18조8천억원)를 거의 다 쓰고,이달 말 만기가 돌아오는 외평채를 막으면 추가여력이 바닥난다.
그래도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한다.
발권력 동원 발언은 일시적 심리효과를 노린 꼼수겠지만 어느나라 중앙은행도 돈의 눈사태 앞에 버틸수 없다.
요즘 지구상에 약 8천5백개 헤지펀드가 있고 이들의 운용자산이 1조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시장 저변에 넓게 깔린 달러자산 팔자 움직임이 강하게 느껴진다.
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가 이 문제로 회동했다.
법에 명시된 한국은행 설립목적은 오직 하나,물가안정이다. 금융감독원의 주목적은 금융회사 건전성 강화에 있다.요즘 공직자들의 말이 정도를 벗어나고 있다.
환란의 주요원인 중 하나가 분명 정책금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망령을 되살리는 감독당국자들이 있다. 2006년 신BIS 시행을 앞두고 은행 건전성 강화에 주력해야할 감독 당국자가 은행에 기업지원금융을 독려하는 말이나,"관은 다스리는 것"이라며 '관치(官治)'금융을 호언장담하는 위세를 접하면 97년 환란의 쓰라린 아픔이 헛되었음을 통탄하게 된다.
공을 세우고 싶은 장수들은 때를 기다리고, 말을 골라 타야 한다.
일단 승마했으면 전력을 다하고, 여의치 않으면 갑옷을 벗으면 된다.
말을 타고 싶은 기수들이 대기하고 있다.
썰렁한 도시에 눈이라도 흠뻑 내렸으면 좋겠다.
꼬리가 개를 흔들고, 개가 사람을 흔드는 세상을 은빛의 침묵세계로 만들었으면 하고 기다려지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