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쌀 수입자유화가 유리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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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중국과 미국이 예상보다 초강수로 전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9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실무협상이 결렬된 데 이어 24일 워싱턴에서 열린 협상에서도 미국은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이 요구하는 대로 관세화를 유예해 쌀개방을 늦추는 대신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최소 시장접근 물량을 현행 국내 소비의 4%에서 8.9%까지 두 배 이상 올리고 국내 시판까지 대폭 허용해달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관세화 유예의 실익에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눈을 안으로 돌려보면 거리에선 농민데모가 이어지고 각종 매체에선 쌀개방 반대 논리가 기세를 올리고 있다.
정부로선 사면초가다.
오랜 세월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깃발 아래 산 우리는 농업문제만 나오면 모두가 냉정한 논리보다는 감정적으로 변한다.
쌀개방을 반대하는 교수나 NGO는 농민을 사랑하는 자로 부각되고 관세화를 주장하는 쪽은 미운 오리새끼처럼 비춰진다.
그러나 수출을 해서 먹고 사는 세계 12위 통상대국으로 우리는 지금 국제적 현실을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우선 쌀시장 추가 개방은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UR) 때 우리가 국제사회에 한 약속이다.
UR 협상의 대원칙인 '예외 없는 관세화'에서 한국 일본 대만 등 극소수 국가들의 핵심 주곡에 대해서만 일정 기간 관세화를 유예해줬다.
이는 한국에 10년의 준비 기간을 줄 터이니 그간 농업구조조정을 하고 경쟁력을 높여 개방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 이 약속이행을 게을리 하고 계속 관세화를 유지하고 싶으면 2004년 협상에서 쌀 수출국들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추가적인' 시장개방을 하도록 WTO 농업협정에 명시돼 있다.
애석하게도 일부 지식인들이 이를 오도하고 있다.
마치 현 정부가 협상을 잘 못해서 쌀시장을 개방하고,우리가 목소리를 크게 내면 모든 걸 원점으로 돌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농민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관세화 유예 여부가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 쌀시장의 빗장을 푸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냐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냉정하게 전략적으로 움직이자.정부는 남은 협상에서 농민단체의 반발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해 최소 시장접근을 낮추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연말에 가서 관세화 유예와 관세화를 통한 개방 중에서 무엇이 농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지를 냉정히 비교해보자.만약 의무수입물량을 7∼8% 이하로 못 낮추면 관세화 유예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UR협상 때 우리와 손을 잡고 쌀 관세화를 그렇게 반대하던 일본이 관세화 유예를 허용받은 시한보다 몇 년 앞서 스스로 시장을 연 것을 눈여겨 봐야 한다.
의무적으로 수입한 쌀 관리에 들어가는 막대한 재정부담 등으로 실익이 별로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협상에서 관세화 유예를 받기 위해 중국 등이 요구하는 까다로운 조건들을 받아들이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 떠안고 이 중 상당 부분이 슈퍼 등에서 시판되도록 허용해야 한다.
그러나 고율관세를 부과해 점진적으로 개방하면 사실 외국쌀이 얼마나 수입될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외국산 쌀 수입량은 국내시장에서 소비자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국민들의 입맛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값싼 외국쌀이 들어와도 우리 쌀이 더 맛있으면 우리 것을 선호할 것이다.
향후 농업개방에 큰 획을 그을 DDA농업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관세화 유예를 위해 의무수입물량을 성급히 늘리면 결과적으로 우리 농민이 손해를 보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부는 전문가 농민단체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말에 나올 다양한 협상시나리오 속에서 우리 농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우리 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이는 정부와 농민뿐만 아니라 납세자 소비자 등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