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원로 시인 김춘추翁 타계

지난 8월4일 기도폐색으로 쓰러져 분당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온 한국시단의 원로 김춘수 시인이 29일 오전 9시께 타계했다. 향년 82세. 김 시인은 분당의 자택에서 저녁식사 도중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는 바람에 호흡곤란 증상과 함께 뇌가 손상돼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넉 달째 투병생활을 해왔다. 경남 통영 출신인 김 시인은 통영보통학교를 거쳐 명문 경기중학교에 입학했지만 5학년 때 자퇴한 후 1940년 니혼대학 예술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사상문제로 3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귀국해 고향친구들인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예술운동을 전개했다.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시화집 '날개'에 '애가'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48년 첫시집 '구름과 장미'에 이어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처용단장' '쉰한 편의 비가' 등 시선집을 포함해 모두 25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그를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한 시는 51년작인 '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로 시작되는 '꽃'은 시전문지 '시인세계'가 최근 실시한 '시인들이 좋아하는 애송시' 설문조사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릴케와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는 '꽃'을 소재로 한 초기시부터 관념을 배제하고 사물의 이면에 감춰진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 '무의미시'에 이르기까지 60년 가까이 한국시단에서 모더니스트 시인으로서 위상을 지켜왔다. 직장에 다니는 외손녀 두 명과 함께 경기도 분당에서 지냈던 그는 지난 8월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시작(詩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투병 중이던 지난 11일에는 제19회 소월시문학상 특별상 상금 3백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전액 내놓아 훈훈한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부인 명숙경씨와 5년 전 사별한 김 시인은 "그 쓸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해 왔다. 유족으로는 영희(59) 영애(57) 용목(56ㆍ신명건설 이사) 용욱(54ㆍ지질연구소연구원) 용삼(52ㆍ조각가) 등 3남2녀가 있다. 큰 딸 영희씨는 "건강하게 사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셨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무런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며 "어머니(부인) 곁에 묻어달라고만 했다"고 전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2월1일 오전 10시.장례식은 김종길 정진규 조영서 김종해 심언주 류기봉씨 등 생전에 가깝게 지낸 시인들이 주도해 시인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장지는 부인이 묻혀있는 경기도 광주 공원묘지.(02)3410 6915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