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금융사 신용위험관리가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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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조
금융회사들이 신용위험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더구나 내년에는 지금보다 상황이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이제 금융업은 리스크가 가장 큰 산업이다.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소비를 하지 않는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은행뿐만 아니라 모든 금융사를 비상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금 금융사들이 신용위험과 벌이는 불리한 전쟁은 자업자득이다.신용위험관리 능력이 금융사의 성패를 결정하는 핵심과제인데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 금융사의 신용위험관리 상황을 깊이 들여다보면 하드웨어는 586,소프트웨어는 386 수준으로 언뜻 보면 괜찮은 것 같다.
특히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나아져서 선진국과 견주어도 그다지 뒤지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부실위험을 줄일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작동 능력은 286 수준으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업무내용을 가르쳐주고 비밀자료를 빼주며 거액의 컨설팅 비용까지 주고 만든 작품이 286 수준인 것이다.
신용위험 관리는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을 분석하는 종합예술이다.
그럼에도 우리 금융사들은 딱 떨어지는 '전가의 보도'만을 찾고 있다.
여러가지 기법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의사결정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기업의 신용위험을 평가할 때 모델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잘못된 회계정보를 갖고 만든 신용평가모델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신용위험 평가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실은 공인회계사의 감사도 받지 않은 기업을 재무관련 정보 중심으로 통계적 모델로 평가하는 게 다반사다.
외국에선 계량적 평가모델은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한 참고자료이지 중요한 수단이 아니다.
신용위험 판단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해야 정확하다.
개인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돈이 안된다고 공과금 수납업무를 기피하는 바람에 신용위험 평가의 핵심자산인 고객의 지불(payment)관련 정보를 내다 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또 신용위험평가 담당자들은 금융사의 핵심인력이다. 그간 국내 금융사들은 관행에 젖어 틀에 박힌 교육으로 전문가를 키우지 못했다.
경험이 풍부한 신용위험평가 전문요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나이를 구조조정의 잣대로 쓴 결과다.
유능한 신용위험 평가자는 다양한 현장 경험을 갖춘데서 나오는 데도 말이다.
경험 많은 40∼50대로 짜여진 외국 금융사를 배워야 한다. 신용위험 평가인력도 너무 부족하다.
거래 기업에 대한 현장실사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들은 다른 업무와 달리 인센티브도 없이 지나치게 책임만 추궁당하고 있다.
이와함께 평가기법에 혁명이 필요하다.
이제 신용위험평가는 대차대조표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제상황과 동떨어진 부채비율 등 많은 전통적 지표들이 무용지물이 돼가고 있다.
자본이 전액 잠식된 기업도 신용위험이 거의 없는 경우까지 나타난다.
최근 자주 거론되는 이자보상비율이나 현금흐름지표도 대폭 수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손익계산서나 현금흐름표 역시 지표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지표변화의 이유가 중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용위험 관리는 현장에서 이뤄져야 한다.
현장 심사가 없다는 건 신용위험관리를 안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는 경영진 등 핵심인력에 대한 평가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감독당국도 개별 부실에 대한 책임추궁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1백억원을 벌다가 1억원의 부실채권을 발생시킨 능력있는 사람은 구조조정으로 팽당하고 1원도 안 벌고 부실채권도 없는 보신주의자는 살아남는다'는 얘기를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금융거래에서 부실채권을 제로(0)로 만들라는 건 신이 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평가해 고의나 중과실이 아닌 경우 면죄부를 줘야한다. 신용위험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가 시급하다.
신용위험 관리는 어렵더라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가야 할 길을 가지 않고 적당히 돌아가려고 하다가는 나중에 큰 후환을 남긴다.
발상의 전환과 함께 신용위험 관리에 과감히 투자하는 금융기관만이 임박한 영업전쟁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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