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官治' 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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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민간·국책을 막론하고 연구소들은 바짝 '얼어붙어'있다.
얼마 전 "요즘 연구소는 (정부 입맛에 맞추는) 심부름센터로 전락했다"는 한 중견 연구원의 한탄을 기사로 소개한 뒤 각 연구소들이 보이고 있는 반응은 이같은 풍경을 단적으로 엿보게 한다.
대학교수로 있는 선배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기사 혹시 A연구소의 P박사 얘기 아니냐"고 물었다.
"최근 만난 P박사가 기사의 내용과 거의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는 것.
B연구소에 근무하는 기자의 대학 후배는 "그 선임 연구위원이 혹시 우리 연구소의 박사가 아니냐"고 물었다.
B연구소의 최근 분위기 또한 그 익명의 선임연구위원이 하소연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유에서 나온 질문일 것이다.
C연구소의 부원장은 "내 생각엔 D연구소 얘기인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연구위원이 한 말을 놓고서 각 경제연구소들이 저마다 '이건 우리의 얘기야' 또는 '이건 모 연구소의 얘기일거야'라고 추측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경제연구소들에 대한 정부의 유·무형의 압력이 최근 들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실제로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판 뉴딜 계획'의 실효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연구소의 연구위원은 "조직에 누를 끼칠까 두렵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상황이 이런 데도 과천 경제부처의 고위 공무원들은 틈만 나면 "정부가 민간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 정부는 정말 민간 기업들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는 얘기를 늘어놓고 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정부도 과거와 같은 '관치(官治)'는 안하고 있다는 강변이다.
그러나 최근 경제연구소들의 주눅든 모습은 민간의 자율 운운하는 공무원들의 말은 여전히 '구두선(口頭禪)'에 지나지 않음을 웅변해준다.
그게 아니라면 혹시 한국의 공무원들은 아직도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굴러가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자신들이 독점해야 한다는 독선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김동윤 경제부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