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 건설명가 M&A에 떤다] (3) 재기한 건설명가들 공포에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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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박세흠 사장은 지난 10월21일 갑자기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채권단이 대우건설 매각 주간사 선정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 중일 때였다.
평소 언론 접촉을 꺼려온 박 사장이었기에 기자들도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기자회견에서 "대우건설 주인찾기"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박 사장은 작심한 듯 마음에 있는 말을 쏟아냈다.
극동건설과 남광토건 등의 사례를 들면서 "대우건설이 해외 단기투자자금이나 국내 기업사냥꾼들의 머니게임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단호한 어조로 여러차례 강조했다.
박 사장의 말은 대우건설 임직원들의 걱정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대우건설이 불안해하는 것은 대우건설도 해외 단기투자자금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은 벡텔 등 세계적인 건설업체가 대우건설 인수전에 참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시공 대신 부가가치가 높은 건설사업관리(CM)를 전문으로 하고 있어서다.
이에 반해 해외 단기투자자금들은 자산과 현금이 많은 대우건설에 군침을 흘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보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우건설 임직원은 공개경쟁입찰시 인수업체의 재무건전성,인수자금의 건전성,인수업체의 사업영역 및 인수 후 사업계획 등 비가격적인 요소도 충분히 고려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해외 단기투자자금의 M&A(기업인수·합병)에 대비한 대응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조만간 매각작업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쌍용건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 10월18일 워크아웃을 졸업한 쌍용건설 임직원은 다른 워크아웃 회사 임직원보다 강도 높은 희생을 감수하며 회사를 되살렸다.
전체 직원의 3분의 2를 감원하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을 뿐만 아니라 워크아웃 기간 중 급여를 절반 수준으로 삭감했다.
또 지난해 3월에는 임직원들이 노후 생활자금인 퇴직금(3백20억원)까지 털어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그것도 당시 주가(2천원대)의 두 배 수준인 액면가(5천원)에 주식을 매입했다.
주식이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임직원들은 인생의 마지막 보루인 퇴직금까지 걸었다.
쌍용건설 임직원들은 이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회사를 되살렸기에 회사가 머니게임의 대상이 되는 것을 결코 방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직 매각작업이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사주조합을 중심으로 대응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그 같은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쌍용건설 임직원은 주식우선매수권을 행사해 종업원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 중이다.
이 경우엔 또다시 임직원들이 대규모 주식 매수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게 부담이지만 어렵게 되살린 회사를 지키기 위해선 추가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쌍용건설 임직원의 생각대로 될지는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다.
우선매수청구권 문제가 복잡하게 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쌍용건설 임직원은 자산관리공사와 채권금융기관들이 보유한 주식 50% 중 절반을 우선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즉 공개경쟁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가 나타날 경우 이 우선협상대상자에 우선해서 우선협상대상자가 제시한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고의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시해 우선매수청구권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잠재해 있어 앞날이 평탄치 만은 않을 전망이다.
또 M&A 전문가들은 채권단이 보유주식을 통째로 매각하는 방식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은 점도 변수로 지적하고 있다.
보유주식의 절반만 쌍용건설 우리사주조합에 팔 경우 나머지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는 주식이어서 매각가격이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각대상 기업의 한 고위 임원은 "회사 매각을 주도하는 자산관리공사와 매각대상인 건설사들의 의견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 매각대상 기업엔 불안감과 함께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