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APEC중심 FTA가 유리하다

이현훈 최근 동아시아에서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세안은 최근의 아세안+3 정상회의 기간 중 중국과 FTA 체결을 합의했고 한국과도 2006년 타결을 목표로 내년부터 FTA 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아세안은 아울러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과도 FTA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한편 중국 일본 호주 등도 적극적으로 FTA 파트너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이같은 동아시아 지역주의는 유럽연합(EU)이나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등이 지역 내 국가들의 공동번영을 목표로 하는 것과 달리 서로 동아시아의 경제중심(Hub)이 되려고 경쟁적으로 양자간 FTA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복수국간 FTA보다 무역창출효과가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내협력과 공동번영보다는 차별적 대우와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인한 역내 불안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까 염려된다. 실제로 중국은 아세안과의 FTA를 통해 동남아 화교권을 연계해 중국이 허브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도 한·일 FTA와 아세안·일본 FTA를 서둘러 동아시아에서의 허브역할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아세안 중국 일본 사이에 주도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좁게는 동북아시아)에서 경제중심은커녕 주변부(Spoke)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그동안 칠레 싱가포르 EFTA 국가 등과 같이 FTA를 체결하더라도 무역확대와 산업구조조정 효과가 미미한 국가들만을 FTA 파트너로 선정해왔다. 일본과의 FTA협상만 하더라도 농산물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경쟁우위에 있기 때문에 국내의 반발이 적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에야 정부도 상황의 시급함을 깨닫고 아세안과 FTA 협상을 개시하기로 했지만 농업이라는 아킬레스건 때문에 협상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현시점에서 우리나라는 보다 근본적인 FTA정책의 재편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동아시아의 FTA를 주도해 나간다는 자세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다음 현재와 같이 역내 헤게모니 쟁탈전과 같은 양자간 FTA협상 방식보다는 역내 공동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복수국간 FTA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내년에 아·태경제협력체(APEC)의장국이기 때문에 이 지위를 잘만 이용하면 역내 지역주의를 주도할 수 있다. 현재 APEC은 선진산업국은 2010년,기타 회원국은 2020년까지 역내 무역·투자 자유화를 실현하기로 하고 있지만 자발적인 이행과 개방적 지역주의(open regionalism)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FTA와 같은 경제통합체가 아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APEC 안에 경제적 수준의 차이가 큰 회원국들이 많이 속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회원국을 대상으로 하는 FTA는 당분간 불가능할 것이므로 APEC회원국 중 '준비된' 일부 국가들간의 복수국간 FTA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국가들은 추후 준회원국으로서 우선협상 대상으로 한다면 궁극적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을 망라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경제통합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APEC FTA는 무역창출효과가 매우 크고 역내의 공동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입장에서 아세안과의 양자간 FTA보다 농업과 같은 민감한 부분을 어느 정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에 협상과정에서의 어려움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규모의 FTA를 주도함으로써 세계의 통상외교에서 위상을 높이고 국익을 도모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1989년 APEC이 처음 태동하는 데 있어 호주 등과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갖는 중재자적인 지위 때문이었다. 이러한 적극적인 역할을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hhlee@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