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에세이] 혁신의 힘‥조헌제 <대한송유관공사 CEO>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제11회 '기업혁신대상' 시상식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보고를 받는 순간 지난 일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스쳤다. 송유관의 특성상 주주사 간 시장경쟁이 심하다보니 민영화 초대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는 과정도 치열했다. 지난 98년 정부의 민영화 방침 결정 이후 임원실 점거 등 모두 18회의 집회농성과 불법파업을 시도했던 한총·민총 양대 노동조합도 더욱 강성화 됐다. 그러다보니 회사의 위계질서와 조직기능이 제 역할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회사는 마치 망망대해에서 조난당한 한척의 배와 같았고,나는 그 배의 선장이 됐다. 그러나 노동조합원들은 출근 첫날부터 정문에서 나를 가로막고 '24%의 임금인상'과 '40개월어치의 공로퇴직금'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어떤 요구도 들어줄 수 없는 것이 당시 회사의 형편이었다. 자본금 2천2백50억원인 회사는 11년 간 2천억원의 자본이 잠식됐고,민영화 전년 매출은 7백21억원이었지만 총 비용은 1천1백39억원이었다. 내가 부임한 첫해 6천5백80억원의 총 부채 중 상환 도래액이 1천2백억원이나 됐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총파업을 단행했다. 관련 부처와 청와대,주주사들도 야단이 났다. 파업을 연대한 타회사 노조원들은 우리 집 앞 골목을 점거하고 밤새 먹은 라면 찌꺼기며 소주병 등을 우리집 담장 안으로 던졌고,식구들은 외출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잔류 인원은 파업이 종료될 때까지 24시간 송유관을 지켰다. 그러면서도 노동조합과의 협상은 포기하지 않았다. 구태를 벗고 민영화 시대의 새로운 비전을 공유하자고 설득했다. 파업사태가 끝난 다음에도 문제는 계속됐다. 공기업 시절의 무사안일주의는 가장 무서운 '내부의 적'이었다. 손익개념도 없었다. 나는 SK의 의식개혁 프로그램을 도입,변화와 혁신을 추진했다. 마침내 직원들의 관리·직능 수준이 레벨업되고 주인의식과 손익개념이 체화됨으로써 이익창출과 비용절감은 급물살을 탔다. 기존 인력의 40%가량을 신규사업으로 전환배치시켰고,새사업으로 3백억원의 매출을 창출했다. 창사이래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회사는 민영화 2년 만에 1백92억원의 흑자를 달성했고,4년차인 올해는 4백억원 이상의 흑자를 내다보고 있다. 그 와중에 1천7백억원의 부채를 상환했다. 그래서 '공기업 민영화'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인정돼 대통령상을 받게 된 감회는 남달랐다. 그동안 CEO를 잘 따라준 구성원들과 동반자로 돌아와준 노동조합원들에게 새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