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가짜 유골' 소동

북한으로부터 전달받은 피랍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씨 유골이 DNA 판독 결과 다른 사람 것임이 드러난 이후 일본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북한은 지난달 평양 실무자 회의에서 메구미씨가 10년전 사망했다며 증거를 요구하는 일본측에 유골을 건넸다. 10여명에 달하는 일본인 피랍자 가족들의 모임은 즉각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발동을 정부측에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내에서도 북한처럼 믿기 어려운 국가와의 협상은 무의미하다며 경제제재가 효과적일 것이라는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다. 일부에서는 "일본의 과학수준을 어떻게 생각하길래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태연스레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주요신문들은 9일자 사설에서 북한을 강력 규탄했다. '가짜 유골,비겁한 처사(마이니치)' '유골 거짓말,김정일에 분노(아사히)' 등 전례없이 강한 톤의 내용이었다. 가짜 유골 소동을 보는 한 북한 정권은 국제사회에서 반인륜적 행위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북한은 메구미씨 가족에게 적어도 두가지 국가 차원의 범죄를 저질렀다. 첫째,13살의 어린아이를 국가기관이 계획적으로 납치,본인과 가족에게 평생 고통을 줬다는 점이다. 어린이 유괴처럼 반인도적인 범죄행위는 없다. 둘째,북한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국교수교를 위해 상호신뢰 구축에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가짜 유골 사건으로 국가간 신뢰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납치에 이은 또다른 사기행위로 많은 피해를 입게 됐다. 당장 일본이 제공해온 12만5천t의 식량과 3백만달러어치의 의약품 지원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런 당장의 피해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북한이 지금껏 주장해온 정당성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식민지시대 일본의 침략과 박해,강제징용,정신대 문제 등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가짜 유골을 보내도 들통나지 않으리라고 믿는 그런 수준의 태도로는 국제사회의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